325 1/22 회원가입회원로그인
  View Articles
 님께서 남기신 글 (2017-11-29 16:43:29, Hit : 325)
<엘버트 마리> 2017. 11 직원 월례 미사

<2017. 11 직원월례미사>

<엘버터 마리>

유럽 여러 나라에서 묘지는 통상적으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네를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대부분 살고 있는 동네 어귀에 공원처럼 꾸며지게 되고, 저녁이면 자연스럽게 발길이 묘지로 향하게 되지요. 제일 아름다우니까요.

거기 가서 제각각으로 가꾸어진 비석들을 훑어봅니다. 독일 사람들의 이름도 많지만, 아프리카 계열의 이름, 러시아 쪽의 이름, 그러다 간혹 킴. 리, 오. 이런 동양계. 한국인들의 이름을 비석에서 발견하게 되면 더 유심히 그 무덤을 살펴보게 됩니다. 제가 살았던 동네는 독일에서도 작은 동네였었는데 그곳 묘지에도 한국 사람 이름이 있더란 말이지요. 이역만리 독일 땅에 몸을 누인 사람이 생각보다 아주 많다는 것을 알게된 건 그 이후의 일입니다.

11월은 이렇게 돌아가신 영혼들을 돌아보며 자신의 죽음도 함께 준비하라는 메시지가 가득한 한 달입니다. 그리고 요즘 저는 2018년도 메리놀 달력을 만드는 일에 빠져있습니다. 수백 장의 사진을 고르고 거기에 사진 말을 붙이고 내년에 병실과 사무실에 걸려 있을 달력 하나도 메리놀 사람들의 향기가 스며있기를 하는 바램 때문에 그렇습니다.

2018년 11월 달력 사진이 뭔지 아세요? 지난 5년간 공사를 하다 지하에서 발견된 한 분 수녀님의 비석이 그 주인공입니다. 1925년 생으로 49년도에 현재 평화방송 자리의 메리놀 구호소에 오셨다가 3년이 되던 해 스물 일곱의 나이로 이곳에서 세상을 떠나가신 ‘엘버터 마리’ 수녀님이십니다.

메리놀병원 40년 통사는 그분의 비석과 한 장의 사진만 남기고, 그분 죽음에 대한 어떤 소사도 기록해놓지 않았습니다. 다만, 미국 메리놀회 수녀님들이 이곳 부산뿐만 아니라 신의주와 평양 등지에서도 활동하시다 일제시대 강제 추방을 당할 곤경에 처하게 되자, 메리놀 수녀회의 원장 수녀는 “내 눈이 파란색이기 때문에 이 조선에 머물지 못한다면, 내 눈을 빼어버리면 이곳에서 이들과 함께 살 수 있지 않겠는가! 내 눈을 파달라!”고 까지 하며 한국을 떠나지 않았고, 그 결과 50년 4월 15일에 빈민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메리놀 구호소를 만들기에 이른 것이라고 기록해놓습니다.  

달력을 만들면서 특히 11월은 이분들을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간략한 소사도 남기지 아니하고 비석하나만 덩그러니 지하에 묻어두었던 메리놀 수녀님들의 지향이, 이제는 어디 내놔도 어엿하고 당당한 메리놀 병실의 한 달 달력 속에서나마 기억되고 간직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지금 우리가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이 자리가 당신들이 죽을 자리라고 생각하고 사셨을 겁니다.

돌이켜보면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을까? 없는 돈 쪼개 지하부터 옥상까지 손 안 간 곳이 없을만큼 대대적인 공사를 하고, 10년 20년 이름도 꺼내기 민망한 의료장비들을 죄다 교체하고, 환자들 누워있는 병실에서 베드까지. 아픈 사람 눕혀 놓고, 오는 사람 진료 다 받으며 그 많은 공사를, 다친 사람 하나 없이 어떻게 우리가 그 많은 일들을 다 할 수 있었을까?

물론 병원장님과 직원분들이 정말로 고생 많이 했지만, 지나서 생각해보니 우리 힘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고되도, 우리가 60년 전 이곳에 첫 삽을 뜨고 동료를 이 땅에 묻으면서까지 철썩처럼 일했던 그 수녀님들! 이곳에 당신 이름을 죽어서라도 묻어두신 그 수녀님들이 저승에서도 이 메리놀을 위하여 빌고 기도해주실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메리놀 괜찮습니다! 모든 공사를 끝낸 내년에는 더 괜찮을 겁니다! 비록 이곳이 우리 죽을 자리는 아니라 할지라도 내가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죽을 것인지를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기에는 더 없이 좋은, 괜찮은, 메리놀입니다!

한 해 마무리 잘 합시다. 남들이 뭐라해도 우리끼리는 더 단단하고 야무진 믿음을 우리 서로가 더 잘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한 달 남았습니다. 힘들 내시기 바랍니다! 아멘.



Warning: mysql_fetch_array(): supplied argument is not a valid MySQL result resource in /home1/namadia/public_html/zboard/view.php on line 266
NAME      PASSWORD
따뜻한 
코멘트 
부탁드려요 
 ▼ 






Prev  <믿음과 연민> 2018. 01 직원 월례 미사
Next  <우아하게> 2017. 09 직원 월례 미사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u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