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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8-05-31 13:22:50, Hit : 340)
<옥상 이야기> 2018. 05 직원 월례미사

<2018. 05. 직원월례 미사>

<옥상이야기>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중구 중구로 121 메리놀병원 8층의 옥상입니다. 퇴근하면 집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퇴근하면 터벅터벅 옥상으로 걸어올라간 세월이 이래저래 5년째이지요. 그래도 초반에는 옥상에서의 풍광도 제법 볼만했습니다.

대단한 건물의 팬트하우스까지는 아닐지라도, 비록 옥탑방이기는 하나 창을 열면 멀리 부산항대교가 바라보일만큼 널찍한 시야가, 그래도 그날 하루치의 수고로움을 털어내기에는 그만이었는데, 이제는 그 풍광마저 사라졌지요.

메리놀 병원이 인증을 통과하면서 환자 안전을 위해 전체 옥상에 팬스를 둘러쳤기 때문입니다. 팬스라는 게 그렇습니다. 밖에서, 멀리서 보면 안전을 드러내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감금과 다를 바가 없지요. 가끔 철조망에 기대어 밖을 내다보는 일이 무슨 동물원의 원숭이 같기도 하고, 때로는 수형생활이라도 되는 듯 처량하다 싶어, 하여튼 그날 이후 하늘 한 번 쳐다보지 않고는 냉큼 들어가 버립니다.  

인증 이후 규정이 강화되고 원칙이 중요해졌습니다. 규정과 원칙은 큰 약속이지요. 이것에 철저하게 복무될 때 수백명 직원들의 동선은 환자의 안전과 의료의 질 향상을 향해 모아지게 되고,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이곳에서는 더더욱 어김이 없어야 합니다. 규정을 지키지 않고 원칙에 복무하지 않으면 시스템이 망가지게 되고, 병원이라는 조직이 이루어내야 하는 공동의 가치에 도달하지 못함은 지당한 사실입니다.

제가 이 당연한 소리, 잔소리를 하려고 귀한 강론 시간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이 원칙과 규정에 담기지 않은 메리놀의 정신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복음적 사랑의 실천이라는 미션을 지니고 있는 메리놀병원 규정집에 등장하지 않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랑입니다. 자비입니다. 용서입니다. 나눔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규정과 법령은 결국 그것의 지배를 받는 구성원들이 준수해야하는 최소한의 행동 지침이자 구속에 불과합니다. 이것만큼은 하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법령의 준수는 오히려 간단합니다. 이것만 하면 됩니다. 그러기에 세상에 있는 모든 법령은 그래서 사랑을 규정하지 않고 자비를 규정하지 않지요. 왜냐하면 그것들은 법과 원칙으로 명문화되지 않는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법 이상의 가치를 요구합니다. 사실 법대로만 할 것 같으면 하느님이 무슨 소용이고 신앙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법대로만 하고 살다가기 싫어서 신부생활을 시작했습니다만 무지하게 많은 법과 규정이 저를 옳아매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새벽 그 철조망 사이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다시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새벽 같이 불이 켜지는 청소 여사님, 세탁실 주임님, 주방 조리원, 한 밤의 근무를 마치고 너털걸음으로 퇴근하는 교대근무 직원들. 그들을 보며 규정과 원칙이 존재하는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원칙과 규정이 아무리 잘나고 대단해보여도 결국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고 사람 좋자고 있는 것들입니다. 원칙과 규정의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적용하는가! 결국 그것을 적용하는 사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지니고 있는 인간에 대한 태도가 더 위중하고 더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모른척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요? 원칙을 지키고 있는가? 규정대로 하고 있는가? 그것으로 상대를 지켜보나요? 아니면, 그가 아픈가? 왜 힘든가? 행여나 나 때문에 다친데는 없는가? 내가 힘들고 상처 받는 것 이상으로 그 사람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는 고통 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도 나에게 하지 않음에 대하여, 이제는 우리가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워할 줄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잘못했으면 잘못을 수정하면 되고, 부족했으면 모자람을 채우면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조금 더 사람스럽게, 조금 더 사랑스럽게 전달하도록 고민해야 합니다. 기왕지사 이리가도 저리가도 시간은 흘러갈 것이나, 이렇게 힘들게 일하면서 나에게 남아 있는 인간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은, 메리놀병원 규정집에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최대한의 존중을 다하여 직원 여러분들께 당부드립니다. 메리놀병원에서 무슨 일을 맡고 계시든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병원이 얼마나 더 발전하고 잘 먹고 잘 살게 되느냐는 그분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우리들의 관심사일 뿐입니다.

하느님의 관심사는 오로지 당신들입니다. 여러분들이 조금 더 좋은 사람, 선한 사람,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부디 서로가 서로에게 선한 사람들이 되어주시기를 청합니다. 비록 철조망을 거두지는 못하지만, 철조망 사이로 보이는 여러분들을 더욱 사랑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들 사랑에 있어서 더욱 힘내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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