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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8-12-20 12:14:48, Hit : 187)
<즈카리아의 두려움> 대림 제3주간 수요일 콜로라도 스프링스 한인성당

<대림 제3주간 수요일>

<즈카리아의 두려움>

찬미예수님. 반갑습니다.
저는 현재 안식년을 보내고 있는 부산교구 조영만 세례자요한 신부입니다.

실은 미국이 어떤지도 잘 모르고서, 최경식 신부님께서 한 번 와보라, 하시길래, 덜컥 비행기를 탔습니다. 특별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뭘 봐야겠다는 욕심이 앞선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뭐랄까요? 내 몸을 얹고 살았던 곳으로부터 완전히 빠져나가고 싶다는 짧은 원의가 지금의 저를 이곳까지 이끌어왔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나이로 50이 되기전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은 자기가 이루어놓은 것들을 헤아리게 되지요. 처자식이 있을 것이고, 적당한 재산과 소유를 통해 일종의 안정감을 희구하는 나이입니다. 병원에서 행정부원장직을 5년째 수행하면서, 내 또래의 의사와 간호사들, 그리고 직장인들이 갖는 불안의 민낯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을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두려움이었습니다.

도대체가 앞을 가늠할 수가 없는, 불확실함에 대한 두려움이지요. 건강에 대하여, 부족한 벌이에 대하여, 그들은 정말로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대부분은 대단히 모자라고 부족하다며 살아갑니다.

의사는 의사대로 모자라고, 간호사는 간호사대로 충분치 않다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행복은 은퇴 이후가 되어서야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하고 살 수 있는, 그때 비로소 확보되는 것처럼, 한마디로 말하자면 지나치게 삶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는 그렇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삶에 빠져서 살고 있습니다. 왜 사는지, 이것이 정말로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인지에 관하여 묻지 않습니다. 왜요? 먹고 사니라! 우리는 오늘도 너무 바쁘니까요! 하지만 정녕, 인간으로 나서 먹고 사는 것 그것만 하고 산다면, 나라는 한 인간의 삶이 짐승과 무엇이 다를 바 있는가!

두려움인거지요. 지금 내 안에 있는 두려움.
목숨에 대한. 생존에 대한. 건강에 대한. 그리고 내가 살아온 생에 대한 두려움.
무언가를 감추어야만 비로소 고개를 들 수 있을 것만 같은 두려움.

눈치봐야 하고. 계산해야 하는. 그 모든 이유로,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게 만드는 두려움.
결국 살고자 하니 두려운 것이고, 결국 뭔가를 지키고자 하니 두려운 겁니다.

죽으려고, 강물에 뛰어들려고 다리 난간을 잡았는데, 시퍼렇게 흘러가는 강물이 불현듯 무섭더랍니다. 죽으려고 했던 그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 피식, 웃음이... 참으로 우끼는 일이다!

이 욕망이 아직도 부지깽이처럼 남아 있으니, 살고자 위선을 부리고, 허세를 부리고, 자기가 가공한 세상에서 저만 옳은 줄 알고 고집 피우며 살다 갑니다.

버리라는 거지요. 가공의 두려움을. 그리고 제대로된 두려움을 갖추라는 겁니다. 참된 두려움. 내 목숨을 놓고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 내 영혼이 굳어가고 식어가고 줄어가고 있음을. 유일하게 두려워해야 할 단 한 분, 내 영혼의 주인, 하느님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을 간직하라는 겁니다.

성탄을 앞둔 즈가리아의 두려움은 그런 것입니다. 자기 계산이 이끌어낸 가공의 두려움이었지요. 경험이라는, 나이가 제법 많은, 그것도 사제의 직무를 수행한답시고 하느님의 장막 안에 들어가 보란듯이 기도란 걸 하고 있지만, 정장 자신은 자기의 경험치와 한계 속에 고스란히 갇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천사가 나타나 건넨 첫마디가, “두려워하지 말라!” 였습니다.
하느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십니다.
이것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내 뜻이 잘 이루어지는 어떤 기계적 장치로 우리는 하느님을 신앙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살아계신, ‘생물’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셔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원하시는 하느님의 기도를 내가 이루어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렵지 않습니다.

즈가리아의 두려움을 기억합시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수용하기까지 말문이 막혀버렸던 즈가리아의 두려움이 주님을 맞이한 이후, 즉시 혀가 풀려 하느님을 찬미하기 시작했던 것처럼, 지금 나를 짖누르는 모든 두려움의 한 복판에 아기 예수님을 누일 나만의 구유 하나를 직접 꾸미시기 바랍니다.

이제 정말 성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멘.

이광희 미리
그렇네요.
성탄이 코 앞에 와 있습니다.
말씀밭에 계신 모든 분들께^^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s .
  2018/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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