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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9-01-10 17:10:37, Hit : 341)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주님 공현 후 수요일

<주님 공현 후 수요일 103위 성당>

(INTRO)
주님 공현대축일로부터 시작하여 연중시기에 돌입하기까지의 전례는, 예수님께서 어떤 분으로 이 세상에 드러나셨는가에 집중됩니다. 중요한 것은 ‘드러나다.’라는 단어겠지요.
‘현현’, 라틴어로 ‘에피파니아’로 불리우는 이 동사는 자동사입니다.
그러니까, ‘드러나다.’가 아니라 ‘드러내다.’가 맞는 표현이겠지요.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십니다! 이것이 신앙의 정석입니다.

사랑은 스스로를 드러냅니다. 하지만 그것을 잘 못 알아듣지요.
그래서 애태우는 사랑이 바로 이 주간들에 우리가 만나는 복음의 맥락입니다.
보아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어리석음의 시간들.
떠나고 나서야 깨닫는 모든 사랑은 내 어리석음의 폭로에 불과합니다.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눈을 뜨고 싶습니다. 잠시 침묵으로 이 미사를 준비합시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류시화의 詩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에서 Motivation하였습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생각보다 청춘은 빨리 지나가고,
왁자지껄 떠들던 소년 혹은 소녀의 하루가 금새 남루한 외투를 걸쳐야 한다는 사실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아마도 나는 더 많이 웃으려 했을 것이고,
나는 사람들의 좋은 면을 더 많이 발견하고 기억하려 애썼을 것입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나의 부모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였고,
그들이 나를 위하여 얼마나 최선을 다하였는지 그 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더 크게 응답하였을 것이고, 더 많이 신뢰하였을 것입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우리는 분명 더 많이 감사했을 것이고 더 깊이 행복했을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 깨닫게 되는 어리석음 가운데 가장 큰 기박함은,
그 때는 몰랐던 것들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데미지...에 있습니다.
당연할 때에는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만나고, 말하고, 어려움 없이 들을 수 있으며
내가 원하는 곳으로 나는 떠날 수 있습니다.
당연한 것들이지요.
하지만 이 당연한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그렇습니다.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잃고 나면 진짜로 깨닫게 되지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반지의 소중함은 그것이 금고 속에 있을 때가 아니라,
잃어버렸을 때 진짜 가치가 드러난다고 말이지요.
지금 우리 손에는 그런 보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정말로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가치를 지금도 모른다는데 있지요.

그 때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말씀드리고자 ‘류시화’의 詩를 따왔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성경의 저자들이 이 공현 주간의 복음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주는 ‘컨택스트’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는 몰랐습니다. 한 이불 덮고 살아가는 사람도, 내 배 아파 내놓은 내 자식도 그 때는 정말로 몰랐습니다. 하지만 한 세상 쭈욱 살다보니 그 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알겠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복음서의 저자들 역시 이것 때문에 성경을 기록했던 것입니다. 그 때는 우리가 몰랐습니다. 함께 밥을 먹고 같이 잠을 자면서도, 그분에 대하여 우리는 다 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때는 우리가 너무 몰랐습니다.

차라리 지금. 그분이 떠나가시고, 모진 세월 다 감당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분에 대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에 대하여! 그분이 나에 대하여 지니고 계시는 관심사! 세상 그 누구도 아니고 바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 스스로를 어떻게 내팽겨 치셨으며! 당신 고통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으셨는지에 관하여! 얼마나 자주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스스로를 드러내셨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지에 가까울만큼  그 드러내심에 대하여 무심하였고, 어리석게 살아왔었는지,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미 수십년 전 벌어졌던 보물에 관한 이야기를 깨닫고 난 다음, 다시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미사를 시작하며 전제하였습니다. ‘드러내었다.’ 라고 말이지요.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가 당신의 사랑을 알아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지금 우리가 당신에 대하여 알아차리기를 바라시고 계시며, 세상 그 무엇도 아닌 오직 사랑에 대하여 우리도 당신처럼 움직이기를 희망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제자들만큼 신앙생활 했으면, 하느님께서 나에 대하여 지니고 계시는 계획에 대하여 알아들어야 합니다. 나의 관심사가 아니라 나에 대하여 지니고 계시는 하느님에 대한 관심사! 그 깨달음으로 차올라야 합니다. 지금도 하느님이 어디에 있냐고, 하느님이 왜 나에게 이럴 수 있냐고 따질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에 관하여, 지금은 나도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제는 그것을 말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03위 성당에서 여러분과 함께 미사 봉헌할 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아마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제가 여러분과 함께 미사할 수 있었음에 대하여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에도 저는 크게 감사드릴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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