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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9-05-08 13:26:32, Hit : 216)
<노년> 부활 제3주간 수요일

<부활 제3주간 수요일>

(INTRO)
오늘 성무일도 제2독서에서 유스티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느님께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고 고백합니다. 다만 그리스도라는 빛 아래에 조명된다면, 내가 누구인지, 곧 하느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을 깨우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빛 앞에 서는 것. 그것이 우리의 할 일이고 우리 찬미의 본질입니다. 찬미기도를 바치겠습니다.

(강론)

지난 두 달을 잘 놀았습니다. 정신 차려보니 석 달이 금방임을 알게 되지요. 더구나 다른 곳에서의 석 달이 아니라 안식년의 석 달은 너무나도 금쪽같은 시간이니까요. 안식년 시작할 때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어, 몇 군데의 피정과 강의를 잡아두었는데, 그 때는 걱정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에게는 안식년 연수가 무려 석 달이나 있었으니까요!

6월부터 곧바로 프랑크푸르트, 런던, 퀼른 세 군데의 피정지도와 7월에는 LA에서의 두 군데 강의가 있는데, 이 석 달만 믿고 맹탕 논 것이지요. 안식년 연수에 들어오면 아무 것도 안하고 제 인생에 길이 남을 명강의를 준비할 줄 알았는데, 웬걸. 연수원 석 달이, 들어라는 강의도 많고, 오는 손님도 많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총무까지 맡아버려 맨날 놀고 먹는 스케줄 짜니라고, 어느새 후다닥 5월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진짜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지난 주말부터 낚시를 접고 도서관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잡은 책이 시몬 보부아르의 <노년>이라는 책입니다. 800페이지쯤 되는데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저게 요청된 강의의 중복된 주제가 바로 <노년>이기 때문입니다.

미국도 유럽도 교민 1,2세들의 솔찬한 나이가 이런 주제어를 파생시킨 것이지요. 미국에 살든 독일에 살든 젊을 때는 먹고 산다고 바쁜 줄만 알았지 어느새 이 나이가 된 줄은 몰랐다는 것이지요. 그리고는 어느날 갑자기 늙어버린 것 같은 육신을 어떻게 보듬고 살아야 할지, 갈수록 물리적 제한성은 늘어만 가는데, 그렇다고 죽어지지도 않는, 이 아리송한 연명을 고통으로만 종결짓고 싶지 않은 처연함이 이런 주제를 던진 것이겠지요.

죽을 때까지 인간일 수 있는 것. 노년에도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세상은 어떤 것인가? 답은 어렵지는 않습니다. 인간이 항상 인간으로 대우받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지요. 죽을 때가 아니라 항상. 바로 지금.

오늘 복음은 평일 주간 뿐만 아니라, 잘못 걸리면 하루에 수십번 읽어야만 했던 병자 영성체의 복음 내용이기도 합니다. 죽음이라는 확고부동한 지점을 향하여 하루 하루 불리한 변화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을 눕혀 놓고 이 복음을 들려드릴 적에 신부님들은 무슨 생각이 드셨나요?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라고. 그 때까지 조금만 더 아프고 이 지리멸렬한 생명의 찌꺼기들을 끝까지 감당하라고 독려하는 수준에서의 얇은 위로가 복음일 수는 없었습니다. 노쇠하거나 병들거나 마비가 된 지경이라 할지라도 복음. 그리스도 예수는 마지막까지 우리의 목적이기 때문이지요. 나비이거나 애벌레이거나. 젊어 만난 예수가 늙어 달라질 수 없는 것처럼. 문제는 나이듬의 상태가 아니라 끝까지 목적을 잃지 않은 태도에 준명한다는 것을 말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복음 앞에 다시 섰습니다. 오늘도 모시게 될 생명의 빵, 그리고 언젠가 우리 모두 저마다 마지막 침상에서 영하게 될 그 봉성체가 맞닿아 있기를. 나비가 애벌레 속으로 기어들어가 기어이 부활하리라는 희망을 어떻게 신자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지가 어렴풋이 다가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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