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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9-06-16 18:25:55, Hit : 406)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삼위일체 대축일 독일 Kamp Lintfort

(삼위일체 대축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찬미예수님! 오래간만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두루두루 뵈니까 좋으네요.
내일부터 있는 유럽 한인 레지오 피정 때문에 잠시 들렀습니다.
사실은 올해가 안식년이라 레지오 피정 마치고 니더라인과 뮨스터에 계시는 신자분들 인사도 드리고, 집에서 노래방도 한 번하고 니더라인 야유회도 함께 하고 싶었으나, 죄송합니다. 인간의 계획이라는 게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짝에 쓸모가 없습니다.

지난 5월 중순에 주교님으로부터 조신부! 안식년 그만하고 교구청에 들어와서 일하라고 하셔서 벌써 저는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이곳에 오래 머물지도 못합니다. 피정 끝내자마자 금요일 다시 돌아가야 할 판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아쉽고, 이제 우리가 만나면 얼마나 더 볼꺼라고 손이라도 한 번 더 잡아드려야 하는데, 이마저도 부질없는 저의 욕심인 줄을 알고 오늘 이 자리에 다 내려놓고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 앞에서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계획이라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깨닫게 됩니다. 평생을 살면서 내가 뭘한다, 뭘했다 큰소리쳐보지만 정직하게 돌아보면 그렇습니다. 헛짓들이 많았고 헛군데 정신 팔려 보낸 세월들이 더 많았습니다. 하느님 앞에 서면 그것이 보입니다. 내가 뭘한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 중에 단 하나라도 내가 순명하고 받아들인 그것들이, 그렇습니다. 그게 진짜고, 그게 진짜로 남는 거고, 그게 진짜 내 것이 된다는 사실을 하루하루 세월을 먹으면서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주교님께 딴 소리 아무 말도 안하고, “순명하겠습니다. 다만 허락해주신다면 유럽 레지오 피정만큼은 꼭 가게 해주십시오.” 청한 것이지요. 사는 게 이렇습니다. 살면 살수록 제 주제를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인생이란 게, 결국 내가 원치 않는 곳으로 끌려가기 시작을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걸 말이지요.

젊은 날에는, 내 뜻대로 내 맘 대로 다하고 살 수 있는 줄 알았을 때는, 하기 싫은 것은 안해도 됐고, 만나기 싫은 사람은 얼굴도 안봐도 됐으며, 그저 저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는 게 잘 사는 건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니 어떻든가요? 하고 싶은데로만 하고 살 수가 없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데도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자꾸 생깁니다. 몸부터 그렇습니다. 자꾸 아픕니다. 병원 가기 싫은데 억지로라도 가야 합니다. 솔직히는 원하지 않은데 자꾸만 움직여야 할 일들이 생깁니다. 나이 먹어 몸이 뜻대로 안되니 어떻습니까? 마음도 뜻대로 되지를 않습니다. 하기 싫다고 안하고 살 수가 없고, 보기 싫다고 안 보고 살 재간이 없습니다. 아이 때나 그러는거지, 나이를 이만큼씩이나 먹고 그저 내 뱃속 편한데로만 살면 그걸 두고 철없다...하는 것에 대하여 이미 내 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실컷 한 평생을 살고, 고작 나이나 먹은 아이로 늙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희망합니다. 몸은 내 뜻대로 되지 않으나 마음만은 정말로 마음먹은 데로 살고 싶습니다. 사랑해야 하면 선선히 사랑할 줄 알고. 용서해야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마음 먹은 그 순간 탁 털어버릴 줄 알고. 나누고 베풀고 섬기고 내가 져야 할 때 그 자리를 물리지 아니하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면 제가 순명하겠습니다! 아멘! 하고 그 자리에서 무릎 꿇을 수 있는 것이, 그게 진짜 신앙이라고 제가 얼마나 여러분 앞에서 강론을 많이 했는데 그지요? ‘안식년 그만하고 일하러 들어와라!’ 하시는 주교님 앞에서 ‘안됩니다. 저 할 일도 많고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아서 안식년 다 하고 들어가겠습니다!’ 할 수 있었겠습니까? 신자들한테 부끄러운 줄 알아서라도 찍소리 안고, 아멘! 하고 교구청 들어가 살고 있습니다. 잘했지요?

저는 교구의 사무처장이 아니라 그 어떤 허접한 일이 되었다할지라도 똑같이 대답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저는 제 자신도 세월을 잘 먹어가는 일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숱하게 강론했으면 제 강론의 단 한 줄이라도 나부터 살아내야 한다는 묵직한 무게감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이 때와 젊을 때는 정말로 그랬습니다. 십자 성호 하나 긋는 것이 어떤 의미인 줄 1도 모르고 그냥 하라니까 몸에 성호 긋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세월이 들어가며 성호 한 번 그을 적마다 이게 허투루 해서 될 일이 아니구나... 싶어집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머리와 가슴과 양쪽 어깨에 못질을 하듯 한 점 한 점 찍어가며 내 몸에 십자가를 긋습니다. 한 번 그을 때마다 내 몸에는 십자 표시 하나가 더 새겨집니다. 하나의 표시가 늘어갈 때마다 십자가는 점점 커져갔지요. 처음에는 가벼웠는데 갈수록 무거워지고 두꺼워집니다. 이제 그만 십자가를 긋고 싶지 않다고 도망치려고 했지만, 어느새 내 몸에 새겨놓은 십자가가 이제는 섣불리 나를 움직일 수 없도록, 나의 십자가에 내가 매달리든지, 아니면 나의 십자가를 내가 끌어안든지 뭐라도 작정해야만 이 십자가가 나에게서 끝이 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만큼의 세월이 흐른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에 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가 일체니, 위격이 어쩌니 하는 교리의 수준으로 이 하루를 평가절하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교의 신비라는 삼위일체 교리를 100% 다 이해했다할지라도, 그것이 그 사람의 인생과 그의 삶에 어떤 변화도 어떤 감동도 어떤 회개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백날 교릿줄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하나입니다. <십자가는 삶입니다! 삼위일체는 삶입니다!>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루를 사는 사람들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우리가 하루에도 수십번 긋는 나의 십자가 속에 내가 있습니다. 나의 십자가 속에 성부 하느님이 들어있고, 성자 예수님이 들어있고, 성령 하느님이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십자가와 함께 살기를 바랍니다. 이것이면 충분합니다.

세상 그 어떤 것도 나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세상에서 붙여준 이름 가운데 그 어떤 직책도 저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오직하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 이름. 내가 평생토록 긋고 살아온 나의 십자가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 자매 여러분. 살아서 한 번이라도 더 십자가를 그어주십시오. 이 나이 먹고도 주책스레 불평과 불만이 쏟아져 나올 때 얼른 그 자리에서 십자가를 그어주십시오. 아직도 미워하고 원망하고, 용서 하네 못하네 이고 지고 앉아있다면 그런 내 자신이 부끄러워서라도 냉큼 그 자리를 떠나지 말고 십자가를 그어주십시오. 사랑해야 하는 데에 어떤 장막도 없게 하시고, 용서해야 하는데 어떤 자존심도 앞세우지 않게 해주십시오. 어짜피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 때문에 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 하나 익히며 살다, 결국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에 나의 구원을 맡겨놓은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 대축일 때마다 이렇게 강론했습니다. 신자여러분. 우리 아파도 살아갑시다. 아프고 힘들어도, 병들고 고통스러워도,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죽음에 직면하거나 혹은 아주 가까이 다가가 있다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성호한번 딱 더 긋고, 하느님이 원하시는 일 딱 하나만 더 이루고 살아갑시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양어깨 우리들의 두 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이 구원의 실천들을, 머리만 크고, 가슴만 울리고 마는 사랑이 아니라, 이제는 이내 온 몸이 그 사랑을 마지막까지 실천하다 떠나갑시다.

'머리'와 '가슴'과 '몸'이 일체(一體)가 되는 일, 그것이 바로 삼위가 일체인 신앙이요, 머리와 가슴과 몸이 사랑 때문에 하나가 되는 삶. 그것만이 바로 내 구원의 길임을, 십자가 그으며 천천히 그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지난 겨울의 끝자락에서 행여나 더 뵙지 못할 듯 하여 찾아갔던 윤석정 요셉 전 회장님과 마지막 기도를 하며 그랬습니다. 당신 몸에 저의 십자가를 그립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이듯이, 이제는 당신께서도 그렇게 마지막까지 살아가십시오. 죽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하느님과 끝까지 사는 것. 이것이 우리들의 운명입니다.  

부디 우리가 만날 날은 이 세상만이 아니기에, 오직 그 믿음 하나로 남은 저와 형제들을 위해서 빌어달라고 청했을 때, 떨리는 목소리로 아멘. 하셨습니다. 평생을 온 몸에 상처를 만들며 살아오신 우리 신자분들. 부디 여러분 몸에 새겨진 그 상처들이 여러분을 구원할 수 있기를 청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한평생 그어온 우리 영혼의 십자가가 이 생의 마지막 날에 우리들을 구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에 가서도 여러분들을 위해 기도할 것이고 기억할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아눈 "십자가는 삶입니다.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루를 사는 사람들 입니다.
십자가와 함께 살기를 원합니다.
이것이면 충분 합니다. "
말씀 가슴에 깊이 새기며, 나를 구원할 십자가를 그어 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신부님의 영육간 강건 하시길 기도드리며...
  201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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