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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9-07-21 06:19:45, Hit : 253)
<관점> 연중 제16주일 교구청 아침 미사

<연중 제16주일>

<관점>

거친 바람 소리에 잠을 깨어 다시 눕진 않았습니다. 이 신새벽부터 저마다 하는 일들이 분주하여 잠시 함께 머문 것이지요. 빗물은 창을 때리고 바람은 나무를 흔들었습니다. 그 쉴 틈 없는 가운데에서도 여명은 밝아오더만요. 특별할 것은 없습니다. 저마다에게 주어진 일들을 저마다 수행할 뿐이었습니다. 그런 아침입니다. 자연은 자연의 일을 하고, 인간은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합니다. 무엇이 자신의 일인지를 다만 스스로 결정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에서 주안점은 그들 스스로 ‘무엇을 선택하였는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누구의 강요도 강박도 없이 각자는 모두 저마다 자신의 선택을 수용할 뿐이었습니다. 아마도 마르타가 말을 꺼내기 전까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루카 10,40)라고 제동을 걸지 않았더라면, 아마 오늘 이야기는 그 누구의 기록에도 남지 않았을 테지요. 그저 유쾌하거나 혹은 무난한 저녁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여인이 이를 막아 세웁니다. 그녀의 결론이 뭐지요? 대단히 완곡하게 표현되었지만 핵심은 ‘왜 나와 같이 하지 않느냐!’입니다. 이것은 정말 고래이래로 숱한 사람들을 죽이거나 괴롭혀온, 소위 경건하다는 자들의 <배타적 알고리즘>이지요. 나와 같지 않음에 대하여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그래서 그분의 입을 막아서라도 내 뜻은 관철되어야만 하는!

스스로의 선택을 통하여 행복을 추구하거나, 하다못해 저마다 하고 있는 일의 의미로서 자신의 존재를 채울 수 없는 상당수의 조악한 인생들에게서 벌어지는 이 일상적인 불만을 주님께서는 비범한 하루로 기록하게 하십니다.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루카 10, 42) 이 필요한 한 가지가 무엇일까요? 이것은 교회가 오랫동안 견지해왔던 'Ora et Labora' 혹은 ‘봉사와 말씀’ 가운데 무엇이 더 우선인가에 대한 논쟁의 결론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쟁점은 이것이지요.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행위를 선택하지만 ‘복음’과 ‘비복음’이 갈리는 기준은 단순하다는 것! 누구를 위하여 행동하는가! 나를 위하여 행동하는가? 아니면 타인을 위하여 행동하는가! 관점이 누구에게 있는가!

마리아의 관점은 누구에게 있지요? 그녀는 예수님께서 언니의 집을 방문하시던 순간부터 그분께 가 있습니다.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을 그녀는 합니다. 여기에는 그녀 자신이 지니고 있던 성질과 태도 그녀의 관심사와 혹은 취향과 무관합니다. 오직 <그녀의 관점이!> 주님에게 있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우선하고 그것에 집중할 따름입니다.

반면 마르타의 관점은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녀는 대단히 좋은 성향과 기질을 가지고 있었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행복해했을 것이며 공동체에서 그녀는 아주 필요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들을 수행하고 난 다음 자신이 계획한 일을 다 마치고 난 다음 그녀는 행복했을까? 생각해봅니다. 만약에 그랬다면 그것은 결국 자기만족에 불과한 수준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랬으니까요.

관점이 주님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이니까요. 그래서 그녀는 대단한 희생을 하면서도, 주님께서 그러시면 안되는 것이고, 마리아도 저러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봉사를 하면서도 마음은 시꺼멓게 타들어가고 기쁨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 밖에 없는 인생. 왤까요? 자기가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관점이 자기 인생의 점령자가 되도록 허용했기 때문이지요.

성인되는 일이 만만친 않지만, 자신의 관점에서 타인의 관점으로 좀 더 수월하게 넘어갈 줄을 아는 사람들이 그래도 성인 쪽에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 아침입니다. 여전히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바라볼 뿐입니다. 아멘.

아눈 신부님 강론 잘 보고 갑니다.
마리아의 관점과 마르타의 관점
스스로의 선택...

교회에서의 봉사...
관점이 '주님'께로인지 '나 자신'에게 인지 묵상합니다.
  201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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