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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20-01-05 06:49:14, Hit : 204)
<빛> 주님공현대축일 교구청 미사

<주님 공현대축일 교구청 미사>

<빛>

주님 공현대축일. 공적인 현현, 神의 드러남은 소란스럽지도 야단스럽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것을 알아보는 이들과 눈치 채지 못한 이들이 뒤섞인 밤이었을 뿐입니다.

有名의 사람들은 알지 못했고, 無名의 이들은 알아차렸습니다. 신비로운 일입니다.
스스로 빛이었던 자, 이름 있던 자는 정작 빛으로 오신 분을 죽여버렸으나, 한 평생 빛 보기만 고대하던 자, 이름도 없던 자들을 통하여 지금도 그분은 빛을 드러내십니다. 또한 신비로운 일입니다.

주님공현축일의 첫 번째 공식. 선민에게가 아니라 만민에게, 지금도 공현하십니다.

저는 언제가, 개마고원 정상에 있는 애기봉 호텔 마당에서 바라본 은하수를 죽을 때까지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밤하늘 끝에서 밤하늘 끝까지 이어지는 무수한 별들의 장관을 보고는 눈을 떼지 못한채 아예 눈덮힌 호텔 마당에 드러누워 눈 앞에 쏟아지는 그 찬란함에 입을 다물지 못한 기억. 그렇습니다. 하늘에는 원래 저것이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은하수를 보지 못하는 까닭은 내 사는 이 세상이 무진의 탁함에 쩔어있기 때문입니다. 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지요. 욕망이 별을 치워버렸고, 탐욕과 오염이 본래의 것을 사라지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가 전하는 구원은 차등한 세상으로의 분리가 아니라, 원래 있었던 것을 보는 일이요! 본시 생명 안에 깃든 거룩함과 신비로움을 되찾는 일이라고! 그리고 이 고집이 지금도 별을 찾는 이들, 곧 우리들의 사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원래 세상에는 사람이 있었고, 원래 세상에는 자연이 있었고, 원래 세상에는 하느님이 있었습니다. 고귀하다면 그것이 고귀한 것이고, 대단하다면 그것이 대단할 뿐입니다. 왜 동방의 박사들이 굳이 유다인의 왕을 찾아나섰을까? 아무 상관도 없는 남의 일일 뿐인데 말이지요.

인간이란 그런 것. 빛을 찾으라 던져진 존재가 인간의 본질임을 꿰뚫은 이들은 그렇게 질문하지 않습니다. 그저 빛을 보았으니 빛을 찾아 떠난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 빛을 통해 자신을 만났고 그 빛 덕에 내가 누구임을 드러내었을 뿐입니다.

주님이 공현되시자, 감추어진 것들이 드러나게 됩니다. 인간의 본심과 복심들. 드러내는 자와 숨기는 자. 본래를 찾는 자와 그것을 감추려는 자. 인간이 제 아무리 날고 기어도 하느님 앞에서 먼지투성이일 뿐. 내 인생이 어디에서 빛나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미망한 탓에 그저 한 평생 덕지덕지 끌어 모은 것 속에서 종료되는 목숨이고 싶지 않아, 이 아침 또 한 문장을 정수리에 얹어 놓습니다.

별은 똑같이 비추이지만, 누구는 보았고 누구는 보지 못했음을, 누구는 깨달았고 누구는 깨닫지 못했음을! 다만, 이 순간도 하느님께서는 지금 빛으로 와 계시다는 복음만큼은 보든 보지 못하든,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선명하다는 것이 공현의 메시지요, 우리의 믿음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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