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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20-03-01 00:50:02, Hit : 142)
<성전> 사순 제1주일 스승예수 제자 수녀회

<사순 제1주일 수녀원 강론>

(INTRO)
오늘은 사순 제1주일입니다. 사순, 주님의 수난과 죽음의 여정에 대한 동행을 시작하는 이 특별한 40일을, 교회는 적어도 1500년, 조금 더 광범위하게 잡는다면 2000년이라는 시간을 소급하여, 사순을 통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사순을 통하여 주님을 체험하고, 사순을 통하여 주님을 따르기로, 한 마디로 재형성, 양육되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40일입니다. 우리들 인생에 찾아와 주었던 많은 시간의 단위 가운데, 아주 특별한 40일을. 우리는 지금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비어있는 성당. 그리고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백성. 교회는 이미 수세기전 성경의 시대가 해왔던 고민을 지금 반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나요? 우리는 사순 제1주일에 그것을 묻습니다. 그들 질문의 답은 성경이었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나요? 이 사순과, 이 미사의 주제어로 던지며, 이 미사를 봉헌하겠습니다.

<강론>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단축적으로 말씀드리자면, 현재 한국천주교회 안에 공식적으로 신자들과 함께 드리는 미사가 중단된 상황입니다. 앞으로의 일을 말씀드릴 재간은 없고, 적어도 과거, 우리가 살아왔던 시간 안에서는 단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던, 최소한 겪어본 적이 없었던 일을 우리는 지금 경험하고 있는 셈이지요.

저는 태어나서 7일만에 세례를 받았고, 세례받은지 3년만에 견진을 받았습니다. 제가 부제품을 받기에 앞서 교구장이셨던 정명조 주교님께서는 저에게 견진 날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역사에 씌여진 그대로를 말씀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단히 많이 아팠고, 부모는 제가 죽을 목숨으로 생각하여, 태능쪽에 있던 상계동성당 주임신부님에게 종부성사를 청하자,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겠냐...며, 종부성사 대신에 견진성사를 주자며 본당 사무장을 대부로 정하고, 죽을 위험에 임박한 신자에게 주는 견진성사를 외국인 신부에게 받았다는 짧은 기록을, 그리고 그 이후 부모는 저에게 이미 죽을 목숨이었으니, 행여나 이 아이가 살아난다면 당신 뜻대로 쓰시라 했는데, 그 아이가 죽지 않고 이날 이때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산 덕에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천주교인이라는 이름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으며, 아마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적지 않은 수녀님들께서도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신앙길을 걸어오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교구의 사무처장이면서도 지난 24일 교구장 주교님께서, 교구 내 신자들과 함께 드리는 미사를 중단하신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 상황과 이 시대와, 최소한 우리가 지금 어떠한 의식의 흐름 속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집중하고 있습니다.

성전이 없는 시대입니다. 이미 수십년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던 우리들에게 어느날 갑자기 성전이 사라진 것입니다. 남유다에 의해서도 아니고, 로마에 의해서도 아닙니다. 이름도 정체도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의하여, 한국천주교회 내의 모든 성전이 현재는 중단된 상태입니다.

성전이 사라진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최소한 우리 신앙인, 저처럼 평생을 하느님이 있는 것이 당연하고, 주일에 미사를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며, 천주교회 신자들은 살아가야 할 삶의 모토가 분명했던, 이제는 그 옛적 사람이 되어버린 우리는,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견디고 감당해야 할까요?

성전이 없는 이 시대. 성전이 폐쇄되고, 성전이 오염되며, 성전이 감염의 주범으로 낙인 찍힌 이 상황에서, 우리는 다시금 성전이 없던 시절로, 우리가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회귀되기를 요청받고 있습니다.

교회가 정해놓은 전례와 규정과 법칙이 통용되지 아니하는 지금 이 시간, 오로지 하느님과 하나된 백성. 그것으로 충분하였던 그리스도인. 교회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며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을 나의 원의보다 앞세울 수 있었던 그 순결했던 신앙 속으로 우리는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본래 교회는 이러한 의식과 원의를 소집하고 드러내 주었던 하나의 양식이고 틀이었습니다. 틀을 통한 조직화는 충분하였습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는 물어볼 수 있습니다. 교회 때문에, 하느님 때문에 당신은 얼마나 사랑하셨습니까? 교회 때문에, 하느님 때문에 당신은 얼마나 행복하셨습니다. 이렇게도 물을 수 있겠지요. 성직자 때문에, 수도자 때문에 당신은 얼마나 기쁘셨습니까?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이 질문에 그들도 대답하지 못한다면, 그렇습니다.

그랬던 성전은, 그랬던 교회와, 그랬던 제도와, 그랬던 성직자는 사라져야 하겠지요.

바이러스는 숙주 없이는 기생할 수 없는 생명체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임자이신 하느님만이 주인이신 이 교회가 바이러스 따위에도 문을 닫을 수 있다면, 저는 그렇습니다. 그럴 수 있는 교회, 그럴 수 있는 제도, 그럴 수 있었던 성직자와 성전은, 문을 닫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로지 하느님 아버지 때문에! 그것 때문에! 성전이 없어도 믿음과 기도를 이어갈 수 있었던 그들의 믿음! 이제는 오직 이것만이 참된 성전. 참된 교회. 진짜 믿음은, 교회 때문이 아니고, 전례 때문이 아니고, 나를 불러주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뱃속 깊이. 내공으로 간지하고 있는 남은 자들 때문이라고!

이 미사 없이도 기꺼이 순교할 수 있었던 우리 신앙 선조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아마도 이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더 많은 다양성과 기회를 가지는 신앙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그 때, 우리가 다시 옛 성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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