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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20-04-12 10:41:54, Hit : 154)
<부활> 부활대축일 스승예수 수녀회

<부활대축일>

<부활>

이제는 이름을 잊어버린 한 수도자의 부활의 아침이라는 시입니다.

새벽 이슬에 맨발을 적시며 /  미명(未明)의 길을 걸어 빈 무덤을 찾았을 /  막달라 마리아처럼 /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나를 향해 걸어오셨고 / 내가 사랑한다고 고백하기 전에 나를 위해 목숨을 주셨던 / 그 사랑의 깊이를 되짚으며 / 걸어갑니다.

언 땅을 헤집고 여지 저기 고개를 쳐든 풀꽃들 /... 꽃송이 송이마다 /  당신의 얼굴이 웃고 있습니다. / 만나는 얼굴마다 당신이 되살아와서 / 나에게 말을 건네옵니다.

... 이미 나비가 된 당신을 /  옛 애벌레의 모습에서 찾았던 막달라 마리아처럼, / 함께 길을 가면서도 알아보지 못했던 엠마오의 제자들처럼 /  우리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애벌래처럼 징그러운 몸뚱이 부벼대며 살아가는 우리들, / 우리들안에 / 당신과 같은 눈부신 모습이 있다는 것이 / 눈물겹습니다.

부활절 아침, / 이 세상 어디에도 안 계신 분을 / 살아있는 모든 것에서 만납니다.

"이제는 네 몸을 나에게 다오, / 나는 네 몸 속에 들어가 /  너를 통해 거듭거듭 부활하고 싶다."

주님, / 내 안에 온갖 어둠을 거둬 뒀던 / 이 캄캄한 돌무덤을 열어주소서. / 매일 매일이 어둠에서 나와 빛으로 걸어가는 / 부활의 아침이게 하소서.

우리 그리스도교는 복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종교이고, 기쁜 소식의 핵심은 바로 부활입니다. 살면서도 새롭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이 부활이요,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이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희망을 선택하고 그래도 생명을 선택함이 바로 내 생명에 생기를 돋게 하는 일임을 신뢰하는 것이 부활입니다.

모두가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고 아우성입니다. 바이러스야 어찌어찌 종식되겠지만, 완전히 무너져버린 경제 상황의 회복은 요원하다며 아우성이고, 당장 성당만 하여도 과연 우리가 옛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을까, 두렵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어제 우리는 부활성야에서 모두 7가지의 독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인간이 어찌하여 났는지, 인간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인간의 삶 속에 담겨져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는 들었습니다. 다시금 새롭게 거듭나고자 했고, 남들처럼 살아야 하거나 혹은 남들보다 더 낫게 살기 위하여 이전투구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목적이 아님도 깨우쳤습니다.


하지만, 정작 세상은 이런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낙오되고, 도태되고, 관심에서 사라지지 않기 위하여 부활의 메시지와는 전혀 다른 이전투구와 악다구니를 중단하지 못합니다. 아니. 차라리 그렇게라도 해서 기쁘고 행복하다면 우리는 입을 닫겠습니다. 그렇지도 못합니다. 분명히 세상에 날 적엔 모두의 기쁨 속에 태어난 우리 하나하나의 생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행복하기 위하여 태어난 생명이었습니다만은, 이 지난한 세월을 관통하며 우리는 하나 둘 기쁨을 잃었고 행복을 상실하였습니다.

“무덤이 비어있습니다.” 부활에 관한 가장 초라하고 가장 의심스러우며 가장 밋밋한 증거에서 사람들은 왠지 모를 <희망의 기척>을 발견합니다. 죽은 시체 뿐이어야 할 무덤이 비어있습니다. 죽음을 끝장내버릴 기세의 천근같은 질주가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속이 비어있습니다. 죽음이 죽은 것입니다. 생명이 죽음을 이긴 것입니다.

마치 겨울의 저주를 뚫고 기어이 터져 오르던 초봄의 목련처럼, 비록 개나리처럼 샛노랗진 않아도 희멀건 병아리색의 산수유 꽃잎처럼, 이 지고한 땅에 다시금 부활을 이루어내는 이 놀라운 생명의 기운이 아직 땅을 떠나고 있지 않음을 절망과 저주에 가득찬 이 세상에서 부활을 희망하게 하시고, 부활을 믿는 몇 안되는 사람들 사이에 우리가 있게 하십니다.

부활을 믿는다면 세상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마치 하나 있고 없음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있네 없네, 맞네 틀리네, 인간이 만들어놓은 틀을 끼워맞추기 위하여 인간을 재단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살아서는 안됩니다.

부활은 참으로 겸허한 생명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살아 자신을 죽일 줄 알고, 살아 탐욕을 버릴 줄 알고, 살아 오직 사랑만이 전부로 남게 하는 그 지엄한 생명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이요, 기쁜 소식이며, 충만한 희망입니다.

하느님은 생명이신 분이십니다. 세상은 살기 위해 남을 죽이고 남의 가슴 시퍼렇게 멍들게 하지만 하느님은 살기 위해 자신을 죽이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의 생명은 우리들에게 희망이 되었습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희망하는 일입니다. 절망은 죽이는 일입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용기를 내는 일입니다. 두려움은 죽이는 일입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웃음은 태어나고 슬픔과 낡은 질서는 죽이는 일입니다.

부활은 바로 하느님의 질서가 새롭게 이 땅에 선포되는 시간입니다.

세상은 참혹하지만 우리는 희망합시다. 세상은 너무나 우리를 속상하게 하지만, 우리는 그 절망을 지나가고, 그 죽음을 지나가고, 그 고통을 지나갑시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지나가는 일이 빠스카 부활입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지나가는 일이 빠스카 부활입니다. 죄에서 해방으로 지나가는 일이 빠스카 부활입니다.

비록 우리, 지금은 부활하지 못한 애벌레처럼 징글징글한 이 육신을 입고 살아가고 있지만, 이 애벌레로 우리의 생명이 마감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날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살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함의 생명으로 들어높여질 것입니다.

어디에도 계시지 않을 것만 같은 하느님을, 살아 있는 모든 것에서 우리는 다시 기어이 만날 것입니다. 사랑하기 참 어렵지만, 그래도 내가 죽어도 그 사랑을 선택할 때 비로소 나에게도 부활이라는 값진 선물이 주어짐을 한 해 한 해 신앙의 나이테를 늘여가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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