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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20-06-21 08:49:34, Hit : 138)
<사목수첩> 연중 제12주일 교구청 강론

<연중 제12주일>

<사목수첩>

얼마 전 새 사목수첩을 한 권 더 받았습니다. 반절도 지나지 않았는데 저의 사목수첩은 한 해를 다 살아버린 것이었지요. 어느덧 1년 만에 네 번째 사목수첩으로 건너오고 있습니다.

부산교구 열다섯 개 지구를 열 개의 지구로 편재하고 지구장 선출방식을 바꾸었으며 거기에 따른 구조조정과 위원회 개편작업이 숨가쁘게 이어졌습니다. 은퇴사제 규정과 사제복지 규정을 20년 만에 손대었고, 교구의 각종 규정집들을 통합했던 기록들이 고스란히 수첩에는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청소년청년의 해를 위한 다양한 초안들과 면담들... 그리고 앞으로 10년만 있으면 20년차 이상의 신부들이 전체 활동 사제의 74%를 차지하는 교구 ‘성직자 고령화 시대’에 대비하여 직책 중심이 아니라 직무 중심의 인사로 구조를 재편하지 않으면 인사 자체를 할 수가 없기에 성사담당, 청소년전담, 그리고 선교담당 사제제도까지. 사무처장이라는 책상에서 감당해야 했던 낮밤의 기록들 4권을 쭉 훑어보는데, 첫 번째 감정은 <벅참>이었습니다.

두 가지의 의미이지요. 무지하게 짧았는데도 뭐가 대단히 많았구나... 하는 ‘넘칠 듯한 가득참’이 첫 번째요, 이 많은 것 중에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었고 어느 것 하나 힘에 겹지 않았거나 버겁지 않았던 것이 정말 하나도 없었다...라는 다른 의미의 벅참이기도 하였습니다.

정말로 교구청에 살고, 교구를 위하여 어떤 결정하고 그 실행을 도모한다는 자체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대단히 두려운 것입니다. 병원에서 근무할 당시 수백 명의 직원들 앞에서, 매일같이 2,3억원씩 결재를 해가면서도 이렇게까지 시달리지 않았던 두려움과 힘에 겨운 벅참은, 그렇습니다. 우리 일의 대상이 사제들이요, 동료들이요, 형제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독서와 복음에 깔려있는 기조를 두려움과 벅참에서 찼는 것은 지당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는 아이라서 말을 하지 못한다.’(예레 1,6) 했던 예레미아마저도 하느님 일을 하겠다고 나선 다음 갖은 치욕과 비웃음거리만 되었다고 울부짖으며 결국 ‘마고르 미싸빕’ 신세가 되었다 한탄합니다. ‘마고르’(두려움) 미 ‘싸빕’(사방 혹은 온천지), 그러니까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있는, 곤경과 곤란으로 ‘겁에 질린 신세’가 바로 예레미야의 처지이자 오늘 독서에서 드러나듯이 그의 ‘별명’이 된 것이지요.  

복음의 제자들 또한 처지는 매한가지입니다. 부활하신 주님만을 믿고 나선 길이지만 그들에게 닥쳐온 것은 박해요, 곤경이요, 비난과 위협입니다.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었을 것이고, 어느 일 하나 그냥 일루어지는 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제자들에게, 이 짧은 구절 안에서도 무려 네 번이나 ‘두려워하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 반복합니다.

눈을 감고 지긋이 ‘두려워하지 마라.’ 거듭하였습니다.
“너는 그 수많은 참새보다 귀하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느님 아버지께서 너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다 안다. 괜찮다. 그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마라”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이제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마라...”

매일이 두려웠던 나날들이 쏜살 같이 흘러가고, 오만 가지 소리와 평가와 판단과 비난들이 스쳐지나갑니다. ‘얼마나 두렵고 벅찼는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근데 왜 이 일을 하게하셨습니까?’ 대답은 이것입니다.

“니가 얼마나 귀한 줄을 알게하려고, 니가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줄을 알게 하려고!”

가장 버겁고, 곤란하고, 벅차오를 때. 그 때를 만나는 법을 다시 익힙니다.
나의 귀함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하찮지 않습니다. 바로 그 때 나의 귀함이 드러납니다!

나 때문에가 아니라, 이런 나를 통하여 기어이 당신의 일을 이루고 마시는 오직 한 분 하느님 아버지 그분 때문에. 우리는 울면서도 일어나고, 상처받았으면서도 문을 열며, 고통 중에 있으면서도 다시 몸가짐을 바로 합니다. 나를 아시고 나를 증언해주실 한 분,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마태 10,32) 이 증언으로 사도들은 죽어갔고, 이 증언으로 그들은 하느님께 새 생명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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