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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20-09-03 16:22:45, Hit : 148)
<깊은 데>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학자 기념일

말씀밭 열매가 부실하여 손님이 뜸한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나, 교구 사무처장 보직을 받고 1년 3개월만에 다시금 병원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옮긴 곳에서는 매일 아침 5시 50분 미사를 봉헌하고는 있으나, 공동 집전하시는 신부님들끼리 강론은 없이 미사를 봉헌하기로 하여 저 혼자 잘난척 강론을 할 수가 없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그래도 혹가다가 들어오는 본당에서의 미사나 강의 요청시, 신자들을 대상으로하는 강론은 미리 준비할 수 있어 정리되는데로 드문드문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금일은 전포성당 견진특강 두번째 강의 전 미사 강론입니다.

모처럼 신자들과 함께 미사 봉헌하겠습니다.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깊은 데>

(INTRO)
2천년 교회의 역사 가운데, 그 업적이 너무나도 커서 ‘大’ 교황으로 불리우는 분이 두 분이 있는데, 한 분은 ‘레오’ 교황이시고, 또 한 분은 오늘 축일을 맞는 ‘그레고리오’ 교황이십니다. 레오 교황이 고대교회의 초석을 놓았다면, 그레고리오 교황은 교회의 형식과 내용을 채운 교황으로 불리우지요.

또한, ‘교회학자’로 불리우는 4명의 성인, 곧 ‘암브로시오’, ‘예로니모’, ‘아우구스티노’와 함께 그레고리오 교황이 그 한 자리를 차지하십니다. 많은 가르침을 통해 교회 쇄신을 일으키시고 전례 음악을 완성하셨기에, 지금도 우리 교회는 그분의 이름을 따서 ‘그레고리오 성가’라는 이름으로 전례를 풍성하게 채우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들은 저마다 주어진 자리와 역할들로 살아가고 있으나, 중요한 것은 어느 자리 어느 역할을 수행하든, 핵심은, 봉사에 그 방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大 교황’이고, ‘교회학자’로 칭송되어진 그레고리오마저도 스스로는 ‘종들의 종’으로 불리우기를 바랬음을 기억합시다. 그 여한 없는 마음으로 이 미사를 겸손되이 준비하도록 합시다.

(강론)

<깊은 데>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어부들에게 할 소리는 아니지요.
그런데도 어부 한 명은 대답합니다.
“그러나, 스승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그들이라고 깊은데에 그물을 내리지 않았겠습니까?
오만 것을 다 해보았을 것이고, 오만 데를 다 뒤지고 다녔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쨌든 그 밤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냥 너털거렸을 수도 있을 것이고, 재수 옴 붙은 날로 치부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말씀을 마친 예수님께서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하십니다.
적어도 이 분야에서만큼은, “주님, 제가 더 빠삭합니다! 굳이 당신이 관여하지 않으셔도 이거는 제가 더 잘 압니다. 마 됐습니다.” 하지 않습니다. 들으신 바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합니다.

분명히 배 주인 시몬은 그분께서 자기 배에 앉아 군중을 가르치셨을 적에 그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시고나서 그분이 자기에게 명하시는 것을 거부할 수 없을만큼의 어떤 끌림에 그는 도달했던 것이고, 그 마음이 이미 그분의 모든 것에 열려져 있었던 결과라고는 밖에는 설명할 재간이 없어보입니다.

어쨌든 그는 그물을 내렸습니다. 어디에? 깊은 곳에! 깊은 곳이 어디를 의미할까요? 우리도 깊은 생각을 합니다. 깊은 걱정을 하고, 깊은 고민을 하고, 깊은 계산을 합니다. 하지만 막상 그것이 진짜 깊은 것이냐 따지면, 뭐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하면 여러분. 지금이 대단히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습니다. 작년은 무지하게 좋았습니까? 그렇지도 않습니다. 작년에도 저는 뭐가뭐가 힘들다고 엄청 투덜거렸던 기억은 납니다만, 조금 더 정직하게 말씀드리면, 고민도 많이 하고 걱정도 많이 하긴 했는데 뭘 그렇게 고민하고 걱정했는지 그 내용은 곧바로 생각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고, 무엇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던 것이지, 깊이 한 것은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많이 할 줄은 알아도 깊이 할 줄은 잘 모릅니다. 공부를 많이 하고, 기도를 많이 하고, 뭐를 많이 할 수는 있었는지 몰라도, 그것 때문에 인간이 깊어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공부를 제일 많이 했다는 의사들이 지금 파업하고 있는 꼬락서니를 보시고, 그렇게 기도 많이 하고 성령충만하다는 개신교 몇몇 목사님들의 행태를 보시면 아시는 것처럼,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성경을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니라 단 한 줄의 말씀이라도 깊이 새겨, 그 말씀 단 한 줄이라도! 내가 살아내고 실천하는 것이 오히려 오늘 복음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티벳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걱정을 한다고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그럴 리가 있나요! 많이 걱정한다고 걱정이 없어질 턱이 없습니다. 얕고 많은 걱정보다 더 깊은 곳에 여러분의 믿음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사람은요 결국, 깊은 물에 빠져 죽지 않는 답니다. 겨우 해봤자 한 길, 1,2미터에서 빠져 죽는 게 인간입니다.

얕은 데서 허우적거리기보다, 깊은 곳. 오늘 내 마음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보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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