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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소리 님께서 남기신 글 (2004-04-10 00:06:08, Hit : 1083)
닭의 목은 비틀어도.. 대림 3주 수요일


<희망이야기>

"닭의 목은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5공 암울했던 시절, 투옥과 망명, 연금과 단식이 이어지고 불의한 죽음이 난무하던 그 때, 야당의 한 지도자는 저항과 희망의 정신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닭의 목은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말입니다.

평화방송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고자 애쓰시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앞으로 4일간 강론을 맡은 조영만 신부입니다.

대림3주간, 여명을 잉태하기 위한 어둠이 깊어갑니다. 오늘 제1독서와 복음 모두는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특히 1독서 예레미아는 우리를 되살려주실 새로운 왕, 이 백성을 고향으로 되돌아오게 해주실 왕이 반드시 탄생하시리라는 희망을 노래합니다. 그리고 복음에서는 한 아기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라는, 역시 희망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희망이 움터나온 땅은 그야말로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지점들입니다. 예레미아는 새로운 왕에 대한 희망을 깡그리 무너저 버린 예루살렘, 바빌론에 의해 철저히 함락 당한 그 땅에서 희망을 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희망의 완성이신 구세주의 탄생 역시도 식민지 속국의, 가진 것 없이 연약하기 만한 한 쌍의 약혼자들 사이에서 시작됩니다.

사실, 희망은 절망의 끝을 보고자 두 눈을 부릅뜬 사람들의 몫입니다.
사실, 희망은 고통의 나락에서도 나를 잃거나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등 따숩고 배부른 사람들의 희망은 힘이 없습니다. 먹어도 먹어도 공복의 허기를 채우기란 결코 쉽지 않으면서도 그들은 사실, 지금이 좋습니다. 희망은 현실에 대한 부정에서 시작되고 지금의 나를 개선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힘이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그렇기 때문에,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키워갈 수 있는 힘이 바로 신앙입니다. 신앙은 희망의 힘이며, 희망의 실천입니다.

오늘 복음을 가만히 보면, 이 희망의 두 가지 종류를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이기적인 희망과 이타적인 희망의 모습들입니다.

요셉은 그나마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철없는 한 여자의 목숨을 빼앗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자기만 상처를 간직한 채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려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러나 그 목소리를 통해 요셉은 자기 희망의 분열을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나를 위한 희망을 접고 너를 위한 희망으로 나아가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불익과 나의 손해를 요구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잠에서 깨어났다"라는 표현을 그렇게 이해하여도 무방할 듯 싶습니다.

잠, 나의 이기라는 잠에서, 나에게로만 치닫던 갈망이라는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자기의 희망이 아니라 하느님의 희망을 선택합니다. 나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수용하기 시작합니다.

많은 경우 신앙을 내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기도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나에게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라고 하면서, 실제 속마음은 '나의 뜻이 땅에서와 같이 하늘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라고 바라기 십상입니다. 또 은근히 진짜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여져 버리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하는 것도 태반입니다.

신앙한다고 하면서, 턱 맡겨버릴 줄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신앙한다고 하면서도 내 뜻대로 안 된다고 실망하고, 내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눈물 흘리고 앉아있습니다. 딱할 노릇입니다.

신앙은 나의 뜻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뜻을 수용하는 일입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신앙생활하면서도 불행할 일들이 천지입니다. 내 것 내어놓지 못하니 하느님의 것이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요셉이 자기 것을 내어놓고 하느님의 뜻을 수용했기에 구원은 시작될 수 있었음에 집중해야 합니다.  

제대로 희망하고 싶습니다. 나에게로의 희망은 머지않아 오기와 집착, 한으로 치닫을 뿐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로 나의 희망을 옮겨야 합니다.

나고 싶어 나지도 못했고, 가고 싶어 가는 세상도 아닌데도, 마치 내 것인 것처럼 살아온 삶을 중지하고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당신 알아서 쓰십시오." 하며 저의 몸과 시간을 내어드려야 합니다.

제대로 희망하기 위하여, 제대로 신앙하기 위하여, 제대로 사랑하기 위하여,
내 뜻대로가 아닌 당신의 뜻에 이 인생을 턱하니 맡겨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행복해지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오늘 하루 하느님 때문에, 하느님에 대한 희망 때문에,
행복한 하루로 살아보심이 어떠십니까?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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