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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소리 님께서 남기신 글 (2004-04-10 00:08:19, Hit : 939)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성가정 축일

<성가정 축일 강론>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맛있는 반찬은 아버지와 저희들을 주시고 어머니는 우리가 남긴 생선 대가리며, 뼈를 발라 드시는 걸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깝다 못 버리고, 새 옷 한 벌 넉넉히 못 사 입으시면서도, 그래도 설빔이니 추석빔이니 하며 명절이면 아동복 큰 칫 수만 사준다고 투덜거렸는데, 어머니는 작년, 그 제작년 그대로인 옷을 저는 몰랐습니다.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남편 벌이로는 아이 넷 키우는 일이 힘들어 시장바닥에 좌판을 깔고 앉아 계셨을 때, 아들은 그 모습이 부끄럽다고 어머니 앞으로는 지나가지도 않고, 몇 일째 화를 내고 있던 어느 날, 어머니는 잠든 저를 어루만지시며 눈물만 흘리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이 가장 죄스럽습니다.

아버지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직장과 노동일에 시달리시면서도, 집세와 생활비에 빠듯하시면서도, 아들이 놀아달라고 하면 기꺼이 야구도 탁구도 함께 해주시던 아버지, 전 그 때, 아버지도 저처럼, 즐겁기만 한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성적 떨어져도 괜찮다고 다음에 다시 잘하라고... 등을 토닥거려 주시면서도 당신 속마음은 서운함으로, 그리고 어머니는 자식들 앞에서 울 수 있지만 아버지께는 그 자리마저도 없었음을,

아버지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술 취하신 다음, 자는 우리들을 일일이 어루만지시며 노래를 부르시던 모습이 너무 싫어, 술 좀 잡숫지 말라고 대드는 아들에게 미안하다, 잘못했다 하시며, 슬그머니 등을 돌리시던 아버지 모습이,
아버지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어느날, 늦은 시간 동네 어귀에서 소주 한 잔 하시고 비틀거리는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오시던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 뒤를 따라 걷고 있자니, 아, 아버지의 그 크셨던 어깨가, 왜 그리 작아보이던지요, 이젠, 아버지가 아닌 그저 당신 모든 것 내어주시고 당신은 줄어가는 초로의 아저씨로 늙어갈 때, 저는 아버지 때문에, 아버지만큼 자라있었습니다.

가정엔 이 분들이 계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먹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랑은 완성됩니다. 그 때는 비록 아버지의 사랑을,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더라도, 그 자녀가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었을 때, 부모님 무덤 앞에 통곡하며, 이제야 당신의 자녀가 되었노라고 다짐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그 자녀들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성가정 축일입니다. 아버지가 아버지 자리에 계시고, 어머니가 어머니 자리에 계시고, 자식이 자식의 자리에 있는 가정, 굳이 거룩하지는 못하다 하더라도, 완전해지기 위해서라도, 우리 가정의 주인을 하느님으로 모셔야 합니다.

아버지 요셉,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자녀인 예수, 이들의 중심엔 하느님이 계셨기에 우리는 이 가정을 성가정이라 부릅니다.

이런 가정의 일꾼들, 이 땅의 모든 아버지, 어머니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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