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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소리 님께서 남기신 글 (2004-04-09 23:57:22, Hit : 853)
프란치스꼬 하비에르 축일> 나해 대림1주 화요일 강론

<대림 제1주간 화요일 복음과 강론>

(INTRO)

일생을 바쳐 복음을 선포했던 성 프란치스꼬 하비에르 신부는 자신의 동료였던 성 이냐시오 로욜라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여기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하고 맙니다. 유럽의 대학, 특히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 가서 사랑보다는 지식을 더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지식으로 열매를 맺도록, 미친 사람처럼 큰 소리로 외치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꾸짖을 마음을 자주 먹었습니다. 여러분의 게으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천국의 영광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비에르 신부는 무력으로 미개인의 땅을 짓밟던 폭력의 시대에 사랑과 헌신을 무기로 삼아 동남아 지역에서만 10만명 이상을 그리스도교 신앙인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아직도 성인의 말이 나에게 유효한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의 게으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천국의 영광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강론)

<신앙은 의무가 아닌 특권입니다.>

세상에는 숱한 의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의무 중에 재미있는 의무, 기쁜 의무는 한가지도 없었습니다. 기쁘게 할 일도 의무라고 생각하면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학생에게는 공부가 그렇고, 아버지에게는 직장생활이 그렇고, 어머니에게는 가사일이 그렇습니다. 심지어 부모님을 모시거나 아이를 기르는 일까지 기쁨이 아니라 의무로 하기 시작하면 그 일은 곧 '고역'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래도 공부하고 직장 다니는 것은 하기가 싫고 때려치우고 싶어도, 의무로라도 해야 내 주머니에 돈이라도 생기는데, 많은 신앙인들이 이 돈 한 푼 안 생기는 신앙을 의무로 하고 앉아있습니다.

신앙이 의무입니까? 아닙니다. 신앙은 권리입니다. 신앙은, 특권입니다. 자식이 아버지를 의무로 봉양합니다. 그 아버지가 기쁘시겠습니까? 신앙은 내 아버지 모시는 일을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아무리 형제지간이 많아도 내가 아버지를 모시려는 마음이 바로 신앙입니다.

신앙을 특권으로 여길 줄 알아야 기쁨이 시작됩니다.
신앙을 특권으로 여길 줄 알아야 내 주머니 돈 생기는 의무보다 더 한 기쁨을 체험할 줄 알게 됩니다. 공부 잘하고 돈 많이 벌고, 좋은 아파트 사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라 왜 그래야 하는지를 알게 해 줍니다.

'상태'의 배부름을 위한 신앙이 아니라, '존재'의 목마름이 채워주는 것이 신앙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제 아무리 부자라도 돈으로 뱃속의 포만감을 느끼기란 쉽지 않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으로 비싼 침대에서 죽어가는 일보다 가난해도 신앙 때문에 든든하고 충만한 삶이 더 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람들이 바로 신앙인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의무가 아닌 특권이어야 합니다. 권리여야 합니다. 억지로 하는 신앙이 아니라 내 존재를 알게 해주고, 왜 사는지를 깨닫게 해주고, 어떤 것이 인간의 도리인지를 실천하게 해주는 신앙이야말로 나를 기쁘게 하는 신앙,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신앙입니다.

하비에르 성인의 삶이 그랬습니다. 내 혼자 잘 먹고 잘 살자는 신앙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이 삶에 동참시키는 것이 선교일진데, 그 선교를 의무로 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어떻게 의무로, 말도 통하지 않는 동남아 선교 여행을 목숨을 내 놓아가며 했다고 할 것이며, 그 오랜 기간 그 나라말을 배워가며 아이들과 죄수를 돌보고 그들에게 당신들도 하느님의 자녀라고 선언할 수 있었겠습니까?

왜 중국 그 넓은 대륙을 선교하지 않느냐는 질문 한 번에 당장 몸을 일으켜 중국으로 가다, 그 목전에서 과로로 쓰러지던 날까지 선교를 의무라고 생각했다면 성인의 삶은 자칫 불행해 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의무가 아닌 권리였고 기쁨이었기에 성인은 이역만리 타향에서 죽어가면서도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오늘 1독서와 2독서를 다시 한 번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을 모시는 신앙인에게 돌아올 유산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바오로 사도는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지를 깨달았으면 합니다.

"여러분의 게으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천국의 영광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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