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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소리 님께서 남기신 글 (2004-04-10 00:04:52, Hit : 821)
미국보다 더 무서운 것 ... 대림 2주 금요일

<대림 제2주간 수요일 강론>

<거저 먹으려는 신앙>

해마다 12월이 되면 한 해의 결실도 정리를 하고, 다음 해의 계획도 세우느라 분주해집니다. 이 맘 때쯤 되면, 본당의 신부 수녀님들은 깊은 묵상과 때로는 시름에 잠깁니다. 다름 아닌 성당 제단체의 장들을 새로이 선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단체의 장을 맡아주십시오. 하면 선뜻, 예 알겠습니다. 하시는 경우를 만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러워 집니다. 혹시라도 못한다고 하면 어떻하나? 괜한 부담만 주는 것은 아닌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확 그냥 그 단체장을 내가 맡아버려...하는 생각마저도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회원들간에 서로 나는 뭐 때문에 안되고, 나는 뭐 때문에 안되고, 서로서로 그 단체의 장을 맡지 않겠노라고 발뺌하는 모습들을 보면 표현은 못하지만 속으로 "야야, 그냥 다 때려 치워라! 마 내가 하꾸마!" 하는 생각이 드는데도 그 선출과정의 진통을 웃는 낯으로 보고만 있자니 환장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봉사의 직분이라고들 합니다. 교회의 모든 일들이 그렇습니다. 2000년 동안 이 봉사라는 개념의 수고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이 교회의 모습이 이어져 오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목숨을 내맡기고 선교를 떠나던 걸음도, 자선병원을 세우고 고아를 돌보던 그 손길들도 모두 하느님을 위한 봉사라 생각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봉사직이라는 것의 의미 속에 은총의 도구라는 기쁨보단, 일방적인 나의 손해, 댓가 없이 수행해 내야하는 인고의 눈물이라는 힘겨움이 봉사라는 실천을 가로막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봉사직을 수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단한 각오와 100% 손해볼 다짐이 서야 겨우 시작하는 것쯤으로 생각하기 쉽상입니다.

이렇게 무거움을 잔뜩 지고 시작하는 봉사라는 직무를 통해 그 사람이 무엇을 체험하겠습니까? 그저 참고 인내해야 하는 고역으로 점철된다면 과연 봉사를 통한 기쁨은 언제쯤 맛보겠습니까? 하느님 일에 감히 나의 손이 동참할 수 있음이 과연 은총으로 받아들여지겠습니까?

많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은총을 받길 좋아합니다. 선물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그런 신앙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 은총들을 <날로 먹으려 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은총을 <거저먹으려는> 심보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눈물과 고통은 싫고 그저 내 인생의 단맛만 내는 은총만을 구하고 있는 모습들입니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다 압니다. 진짜 은총은 고통 속에 피어오른다는 사실을, 내 뜻의 성취가 아니라 하느님 뜻의 성취라는 큰 은총은 내 뜻이 죽어야 하는 "눈물" 속에서야 피어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만 압니다. 하느님 은총이라는 선물의 포장지는 바로 고통이고 눈물입니다. 그것을 뜯어낼 줄 알아야 그 속에 담기 선물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날로 먹으려 합니다. 그저 먹으려 합니다. 어찌 도전도 없이 자유를 갈망한단 말이며 수고도 없이 댓가를 누리려 한단 말입니까? 인생에는 무임승차가 있는지 몰라도 신앙에는 무임승차가 없습니다. 거저 성인된 사람 없고, 거저 구원받은 사람도 없습니다.

계획 없는 사람 없습니다. 안 바쁜 사람도 없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라고 안 바쁜 것이 아닙니다. 모두다 '바쁘다'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정작 무슨 일로 바쁘냐? 모두가 내 일 때문에 바쁘기 그지없습니다. 나의 계획 때문에 바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나의 계획과 하느님의 계획은 언제나 마찰을 일으킵니다. 내 계획이라는 것이 대부분 이 세상의 일들이다보니 당연히 이 세상과 하느님은 충돌을 일으킵니다.

세상의 일과 하느님의 일을 선택하는 데 있어 적지 않은 경우 하느님의 일은 뒷전으로 밀리게 마련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지닌 가치보다는 당장 내 눈에 보이는 가치들을 쫓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신앙한다 하면서도 나는 눈에 보이는 것들만 하나 더 가지고 하나 더 넓혀 나가려 안달을 부리는 신앙의 불협화음이 생겨납니다.

그러니, 10년, 20년, 신앙하면서도 공허하다, 그러고, 믿는다 하면서도 기쁨이 없는 까닭이 당연합니다.

길어져서 안되겠습니다. 감히 말씀드립니다. 은총 받고 싶거든 은총 받을 일들을 하십시오!
은총이라는 선물이 오는 통로는 "기도"이고 "봉사"입니다. 그 통로가 좁디좁은 사람들, 마음으로만 해야지... 해야지... 하고, 마음으로, 먹고 살만하면, 한가하면, 해야지... 해야지... 봉사를 다짐하는 사람들은 그 받는 은총도 아기들 오줌빨입니다.

피부로 몸으로 체험하고 싶으신 분들, 기도를 선택하시고, 봉사를 선택하십시오. 하느님의 일들에 기쁘게 "예!" 하십시오. 그래서 봉사라는 직무를 통해 내가 얼마나 큰 은총을 몸으로 체험했는가를 마음으로만 신앙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저 보여주십시오.

2003년도 하느님의 일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답하신 분들게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제 그 일을 선택하셨으니, 그 일 속에서 은총을 가꾸어내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믿고 바라는 사람은 새 힘이 솟아나리라. 날개쳐 솟아오르는 독수리처럼, 아무리 뛰어도 고단하지 아니하고, 아무리 걸어도 지치지 아니하리라."

오늘, 1독서의 말씀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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