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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소리 님께서 남기신 글 (2004-04-16 19:42:29, Hit : 2049)
<익산 글라라 수녀원> 연중 제17주일 강론

<익산 글라라 수녀원>

20년 전, 가톨릭 신문 한 귀퉁이에 한국에 진출한지 얼마되지 않는 어느 수녀원이 건물을 지을려고 하는데 어려움이 많아 신자분들의 도움을 청한다는 내용의 광고가 있었습니다. 이 광고를 읽은 초등학생 한 명은 수녀님들이 이런 곳에다 글을 실어야 할 정도로 힘들어하신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한 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수녀님들께,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시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니 힘을 내시라하고 그 때까지 자신이 모았던 저금통을 깨 그 전부를 수녀님들께 보내드렸습니다. 그리고 편지의 마지막에 자신도 앞으로 크면 김대건 신부님을 닮은 사제가 되고 싶으니 수녀님들께서 기도해 주십사고 영악스런 부탁도 동봉하였습니다.

그리고는 20년이 지났습니다. 어느덧 장성한 소년은 사제서품을 받기 위해 준비하던 중,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옛날 저금통을 깨 자신들을 도와주었던 소년을 위해 이곳에 있는 수녀들 모두 같은 마음으로 20년을 기도하였으며 서품 받을 때가 되자 가톨릭 신문을 끊임없이 뒤적였다고... 그리고 올해 그 이름이 나오자 반가운 마음에 한 번 들러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익산에 있는 성글라라 수녀원이었습니다. 한 번 들어가면 관속에 담기기 전에는 나올 수 없는 봉쇄 수녀원이라는 사실도 몰랐고 어느 곳에 있는 수녀원인지, 어떻게 생겨먹은 수녀님들인지 아무것도 몰랐던 그 소년은 20년 전의 그 약속을 지키는 마음으로 신부가 되고 나서 그 수녀원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봉쇄 수녀원이라 굵은 철조망을 앞에 놓고 수녀님과 이제는 사제가 된 소년은 마주 앉았습니다. 그리고 수녀님들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는 스무해 전에 소년이 섰던 편지를 읽어주셨습니다. 사실 편지 내용을 까맣게 잊고 지냈던 그 소년 역시 눈물을 흘렸습니다.

함께 미사를 드리며 소년은 말씀드렸습니다. 이곳에 제가 온 까닭은 여러분 20년의 기도가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하느님께서 배려하신 듯합니다. 수녀원은 훌륭한 건물에 수도회 가족들도 많이 늘었고, 소년은 역시 사제가 되었으니 하느님께서는 아마 오늘우리가 만나 마음껏 기뻐하라고 이곳에 보내주신 듯 합니다.

소년이 보냈던 것은 한 통의 편지와 자신이 가진 미천한 저금통이 전부였는데, 하느님은 엄청난 일을 해주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 앞에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밀던 그 아이의 손길도 마찮가지입니다.

오천명이라 하였습니다. 그것도 여자와 어린이는 제외하고 장정만 오천명이라 하였습니다. 엄두가 나지 않는 일입니다. 200데나리온 어치... 한 데나리온이 당시 일꾼들의 하루 품삯이었으니 200데나리온이면 200일을 일한 품삯입니다. 지금 돈으로 하루에 5만원씩만 쳐도 천만원이 넘는 큰 돈입니다.

그런 돈을 들여서도 부족할 이 일 앞에,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이 일 앞에, 한 소년이 내미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부족하다는 말조차도 소용없어 보이는 그것이... 하지만, 한 소년에겐 <전부>였습니다. 이 많은 사람 앞에 터무니 없기만한 그것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그것을 주님은 너무도 귀하게 받으십니다.

그리고 소년이 내민 그 전부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십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먹었고, 그것으로 배를 채웠습니다. 전부가 넉넉히 먹었습니다. 전부를 바치자 전부가 채워진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영성적이자 대단히 실재적인 이야기입니다. 전부를 내 걸었을 때 전부를 채워주시는 분 하느님이십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고를 따지면 결코 깨닫지 못하는 이야기입니다. 신앙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전부를 걸고 전부를 얻거나, 아니면 일부 때문에 전부를 잃어야 하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오늘 복음은 그것을 보여줍니다.

영원한 생명, 아니면 영원한 멸망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 갈림길에 설 때까지 전부를 맡길 줄 알아야 하는데, 어줍잖은 그것, 어줍잖은 자존심과 어줍잖은 소유와 어줍잖은 인정들 때문에 놓지도 제대로 쥐지도 못한채 전전긍긍하는 인생들입니다.

그러니 신앙한다고 하면서도 기쁜 줄을 모르고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맡길 줄을 모릅니다. 그러니 기도도 피곤하고 기도하면서도 머리는 오만 분심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신앙이 행복인줄 모르고 사는 인생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완전함 자체가 아니라 완전한 의탁 그것입니다. 부족한 지금이고, 부족한 나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완전함을 이루어주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그것으로 충분히 채우셨던 하느님을 믿는 일이 바로 우리의 일입니다.

죄와 인간적 한계 속에서도 완전함으로 이끄시는 분 하느님이십니다. 내 맡길 때 비로소 채움은 시작되는 것처럼, 내 손을 폈을 때 그 손은 하느님의 손이 됩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제서야 비로소 시작됩니다.

지금도 가끔 그 수녀원에서 편지가 옵니다. 소년은 이미 그 저금통보다 천배 만배 더한 것을 지금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천명을 먹이는 일, 인간에겐 그것이 대단해 보이지만 하느님께 그것은 일도 아닙니다. 그 이상의 일을 언제나 우리에게 베풀고 계십니다.

그 소년의 저금통과 어느 아이의 빵 다섯 개,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
나는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바라고 있습니까?
무엇이 고민이고 무엇이 눈물입니까?
그리고 나는, 무엇을 내맡기고 있습니까?

이제는 깨달을 때도 되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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