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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소리 님께서 남기신 글 (2004-04-16 20:18:22, Hit : 2674)
<내 친구 오택수> 공현 후 목요일

<내 친구 오택수>

지난 성탄 때 몇몇 분들에게서 성탄카드를 받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택수라는 친구에게서 온 카드는 저의 마음을 한동안 사로잡았습니다.

"영만아, 나에게 너 같은 친구가 있음에 행복하다. 성탄 축하한다."

사실, 오택수라는 친구는 신부입니다. 올해로 중앙 수석보좌를 끝내고 필리핀 노동자 사목을 준비하겠노라며 1월 말에 필리핀으로 연수를 떠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신부입니다. 따지고 보면 저보다 나이도 한 살이 더 많을 뿐만 아니라... 또 사실 이 친구의 고향이 서울인데다가 저는 광주에서 다니고 또 오신부는 부산 신학교 1기생이었기 때문에 자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서로 나이가 먹어 부산 신학교에서 함께 생활했을 때만해도 저는 오택수 신부를 편하게 대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친구가 쓰는 서울 말씨가 자꾸만 귀에 거슬리고 괜스레 서울 뺀질이 어쩌구 하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투박하기 이를 데 없는 부산 사내들 사이에서 오택수 신부는 점차 따로 국밥처럼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택수 신부는 급기야 자진해서 휴학을 했고 저도 뜻하지 않은 사고로 휴학을 하고 난 다음 오신부와 저는 부제반이 되어서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내 맘 속에는 은근한 미안함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서울내기 허연 얼굴의 이 친구는 아무 스스럼없이 제게 다가와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제가 되어 우리 둘은 인근 본당으로 나란히 발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때까지도 저는 오 신부의 마음을 제대로 몰랐는지 모릅니다. 딱딱하만한 경상도 사람들 사이에 그냥 서울내기라서 싫었던 오 신부가 얼마나 신자분들 한 분 한 분의 상처받고 쓰라린 마음들을 정성껏 치유해주는지를 저는 제대로 몰랐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청년들에게는 청년들의 시선으로 어르신들께는 마치 손주처럼 신자들과 함께 울고 웃고 살아가는 사제라는 사실을 저는 한참이나 지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중앙성당에서 떠날 때, 정말로 많은 신자들이 오 신부의 그 정성스런 마음 씀씀이에 성당 사람들이 참 많이 아쉬워 하셨다합니다. 청년회 숫자가 40명으로 불어났고 떠날 때 자기가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죄다 꺼내 자선 바자회를 했답니다. 그리고 그 수익금 30만원을 물만골 공부방에 고스란히 올려주고 자기는 다시 빈손으로 먼 길을 터덕터덕 걸어가는 이 신부의 뒷모습을 보며 어찌 이런 신부에게 친구라고... 내 같은 사람을 친구 둔 것이 행복하다는 카드를 받고서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애살...하면 저도 한 애살 하는데, 오택수 신부에게 저는 택도 없었습니다. 오신부의 그 마음 씀씀이에 저 역시도 푹 빠지고 만 것이지요.

아... 이런 사제들이 필요하구나... 함께 울고 함께 웃고 따뜻한 마음 씀씀이 넉넉히 풀어줄 그런 신부가 필요하구나...

오늘 복음에 예수님께서 자신의 정체성을 밝혀주시는 대목, 당신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선포하는 대목을 읽으며 이 말씀이 오늘날 어떤 모습의 사제상으로 표현되어져야 하는지를 되묻게 됩니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복음을 전하고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는 일, 이러한 일을 통해 하느님 은총의 해를 선포하는 일은 결코 딱딱함이나 거만함으로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강함을 이기는 부드러움으로, 사람의 굳은 마음을 녹이는 친절함으로, 그 사람과 함께 고통을 나누려는 넉넉함으로만이 예수님의 이 사명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비단 사제 뿐 만 아니라 하느님의 일을 한다는 모든 신앙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덕목입니다.

날 더운 필리핀을 간다는데 답장도 안 써 준 무뚝뚝한 경상도 사내인 제가 그래도 이 친구에게 뭘 하나 선물할까 고민고민 하다가 멋진 수영복하나 사주기로 했습니다. 아마 애살덩어리 서울내기도 생각지 못한 그럴싸한 선물 아닐까 싶습니다.

친구야... 제발 이 수영복 입고 그 허연 얼굴쫌 태워오니라... 허연 얼굴에 버터 말씨 때문에 부산 처녀들 애간장 녹이지 말고 그 곳 원주민처럼 좀 시꺼멓게 만들어서 오니라... 그래야 나도 니하고 좀 게임이 될 것 아니가?

신부가 되어 만난 친구야... 잘 갔다 온나... 예수님처럼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빛나는 목소리로 은총의 해... 잘 선포하고 온나...

오늘 첫 소임지로 가신 두 분 신부님과 먼 길을 떠나는 동창 친구 신부를 보내며 다시 한 번 오늘 복음을 읽게 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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