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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04-06-29 18:19:12, Hit : 2442)
<전동혁 베드로>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전동혁 베드로>

산청엘 다녀왔습니다. 부산과 마산 교구 동창신부들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마산 동기생들은 모두 주임신부가 된 상태라, 마산 주임들이 아직도 보좌신부를 하고 있는 부산 동기생들을 불러 조촐한 위로(?)의 자리를 배려한 덕분이었습니다.

산 좋고 물 좋은데 앉아 돼지고기 삼겹살도 굽고 소주도 몇 배씩 돌리니 어느새 신학교 시절의 그 모습들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어리숙해 보이고 또 때로는 한 성깔 지기던 그 모습들이 이제는 주임이랍시고 각자의 틀을 만들어가며, 그리고 또 부딪히기도 하며 그렇게 '꼴'을 만들어 가는 모습들이... 예, 좋았습니다.

책임이 늘수록 사람이 깊어진다고... 그냥 보좌신부들끼리 만났을 때는 주일학교 문제나 청년회 문제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이젠 주임신부가 된 동기들은 그 내용들이 달랐습니다.

다들 형편 어려운 시골본당에서 생활하고 있으니 본당 살림 걱정, 신자들의 농사 걱정, 올해는 감자 농사가 괞찮았다는 둥, 모내기는 어떻게 했냐는 둥, 비가 오면 함께 기뻐하고 태풍 오면 함께 걱정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 정말로 삶의 이야기, 사는 이야기가 들어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들 하지요... 그래서 '그런 사람이 아닌데...' 한 자리 맡게되면 전혀 엉뚱한 모습으로 살기도 하고 또 그 자리가 주는 중압감에 못 이겨 그 사람답지 않은 모습들도 많이 드러내기 일쑤인데... 그래서 사람이 달라졌다는 둥,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는 둥... 하는 소리들을 듣게 되니... 사실, 신부라는 존재도 이것저것 눈치 볼 일이 많을 수 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자유롭게 살기 힘이 듭니다. 자유롭다는 말이 굳이 방종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회적인 틀이나 요구를 외면할 수 없기에 로만칼라의 목조임처럼 늘 무엇엔가 눌려 사는 듯한 갑갑함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싶었는데, 동기모임에서 만난 괴짜같은 친구하나가 이를 달리 생각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전동혁이라는 신부입니다. 한 마디로 괴짜입니다. 반바지에 면티 하나 딸랑 입고 나타난 이 친구는 사실 그 어떤 '틀'로도 제한할 수 없을 정도로 넓었습니다. 고상하거나 근엄함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냥 민방위 모자 쓰고 동네 한 가운데를 걸어가면 시골 마을의 팔자 좋은 백수, 아니면 방금 하우스에서 수박을 따다 참 먹으러 어슬렁 기어 나오는 막일꾼 같은 모습입니다.

어린이에게는 어린이의 눈높이로 그리고 어른들에게는 다정하기 이를 데 없는 순수 청년으로... 한 마디 한 마디 그 마음씀씀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성질도 급하고 또 단순해서 반성도 빠르고 후회도 자주 하지만 그 모습이 도리어 사람들에게 친근함으로 다가왔나 봅니다. 그래서 누구든 그 신부를 만나면 자기 방어선을 허물어버립니다.

벽을 허물고 틀을 허물어버리지요. 그리고는 유유히 자기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또 그 얼굴에 함박웃음 터뜨립니다. 잘 보여야 하겠다는, 잘 해야겠다는 그 자리가 주는 무게에 함몰되지 않고 그저 사람으로, 또 사제로, 자기 본당의 할아버지들과 내기 장기를 두어 세 번이나 술을 얻어먹었다며 자랑하는 젊은 사제의 모습에서... 어쩌면 베드로라는 사도의 얼굴을 얼핏, 훔쳐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서투르기도 할 것이고 또 때로는 여린 맘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겠지만 그래서 성도 내고 또 금방 반성하며 돌아서서 냉큼, 다 못난 자기 만나 신자들이 고생한다고... 어느새 본당의 아버지 마음으로 돌아와 앉은 베드로 사도...

예루살렘을 빠져나가려는 그가, 다시금 십자가를 쥐고 돌아오신 스승을 보고 냉큼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 자신은 감히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죽을 수 없다며 십자가를 거꾸로 매달아 죽기를 희망했던 베드로...

참 단순한 사람, 그래서 참 맑은 사람, 어떤 틀에도 매이지 않고 어줍잖은 말로 제한 할 수 없었던 그 사람...처럼 많은 사제들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고, 많은 신자들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뒤에 무엇을 많이 남겨놓는 사람, 말하는 것 이면의 것을 늘 읽게 만드는 사람일수록 사는 일이 피곤한 것...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냥 말하는 것이 전부인 사람, 그냥 그 얼굴이 전부인 사람이 하느님의 얼굴과 더 많이 닮은 사람 아니겠습니까?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사도 축일에... 이 괴짜 신부가 헤어지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형님. 오늘 강론, 내 이야기 해 줄꺼지요? 내 이야기 잘 좀 해 주이소..."

"그래 동혁이, 베드로 신부야... 니 이야기 잘 했다이... 니도 정말 맑게 그리고 꾸미지 말고 지금 그 모습으로 잘 살거래이..."

오늘, 많은 베드로 바오로 신부님들을 함께 기억하며 이 미사를 봉헌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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