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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일심 님께서 남기신 글 [homepage] (2005-01-09 00:11:44, Hit : 2098)
왜 죄없으신 분이 죄사함의 세례를 받으셨는가?

1년의 전례력은 그때그때마다 우리들에게 신앙의 신비의 핵심을 전해줍니다. 우리가 대축일이나 매 주일마다 이 메시지에만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들의 거의 구원에 가까워졌을 것입니다. 정말입니다. 오늘 축일도 우리에게 놀라운 신비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인간되심, 곧 성탄으로 세상을 기쁘게 해주고 우리들에게 희망을 주시면서 시작한 한해는 공현대축일을 통해 우리를 섬기러 오신 하느님의 겸손과 사랑을 전해주었고 오늘은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삶의 모습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미리 보여준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해가 안되는 것은 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는가라는 점입니다. 세례는 죄를 씻어주는 예식이고 천국의 시민으로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인데 죄도 없으시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인간이 걸어가야 할 삶의 참된 모습을 보여주실 분께서 왜 인간의 세례를 받으셨냐는 겁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세례는 고통 받는 야훼의 종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면서 들으셨던 말씀, 곧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다”라는 표현은 예수님이 이뻐서 한 말이 아니고 의로운 야훼 하느님의 종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사야서의 고통받는 야훼의 종의 노래의 시작은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믿어주는 자, 마음에 들어 뽑아 세운 나의 종이다, 그는 나의 영(靈)을 받아 뭇 민족에게 바른 인생길을 펴 주리라."(이사 42,1)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다”라는 말은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이 곧 야훼 하느님의 종이며 예수님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밝혀주는 메시지였다는 뜻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오늘 복음에 나타난 이 음성이 야훼의 종의 노래에서 나온 야훼 하느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면서 이사야가 말한 '야훼의 종'으로서의 삶을 살도록 불림을 받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확신하셨다고 전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면 이사야가 말한 '야훼의 종'은 어떤 사명을 지닌 분인가? 오늘 제 1독서는 "너는 만국의 빛이 되어라. 소경의 눈을 열어주고 감옥에 묶여있는 이들을 풀어주고 캄캄한 영창 속에 갇혀있는 이들을 놓아주어라."(이사42,6b-7)하며 야훼 종의 사명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세례 때 확인한 당신의 사명인 것입니다. 이는 또한 예수님이 자기 고향 나자렛 회당에서 확인한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을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에게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는 것"과 같은 사명인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사셨습니다. 그리고 이 삶을 십자가 위에서 마치셨습니다. 다시 말해 오늘 세례 때 받은 예수님의 사명은 십자가 위에서 완성되었다 이 말입니다. '고통받는 야훼 종'은 자신을 바쳐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느님의 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고통받는 야훼의 종'으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묵묵히 끌려가.... 죄인들과 함께 처형당할"것임을 아셨고, 끝내 그 길을 가셨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의 아드님은 회개와 용서로 이끄는 세례를 받아들이심으로써 당신 자신을 죄 많은 인간과 동일시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당신은 세상의 모든 고통과 죄를 당신 자신에게 가지고 오셨습니다. 당신이 고통을 받으심으로써 그분은 야훼의 종처럼 우리의 아픔과 병고를 모두 고쳐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들이 받은 세례는 예수님의 고통과 세상의 죄를 속죄하시는 그분의 희생에 힘입어 용서받게 되는 세례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바로 우리를 위한 구원의 희생이 오늘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이유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세례가 십자가상에서 우리 모두를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내어놓으실 때 완성되었다면, 그분의 세례에 동참하고 있는 우리들의 세례도  다른 이를 위하여 우리의 생명을 내어놓는 세례가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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