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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homepage] (2010-06-16 02:39:06, Hit : 1335)
< 산다는 것은 되어가는 것 > ::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산다는 것은 되어가는 것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① 1열왕 21,17-29 ㉥ 마태 5,4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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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품을 받고 첫해에 가끔 바오로 서점에 놀러가곤했었는데 그곳에서 단박에 제 시선을 끄는 책 한권을 발견했습니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신자들의 재교육을 위한 교재로 매우 간결하게 정리해 놓은 책이었는데 그 책의 제목이 “산다는 것은 되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책을 들춰보니 이 책의 제목은 성공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해서 나중에는 추기경으로 서품을 받은 영국의 어느 신학자의 글에서 따온 말이었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존 헨리 뉴먼John Henry Newman입니다. 그는 개종하던 해에 발표한 논문 “그리스도교 교의(敎義) 발전론”이라는 논문의 39쪽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blockquote>
“저 위의 세상에서는 다르겠지만, 여기 아래의 세상에서는 산다는 것은 되어가는 것 (변화하는 것), 그리고 완전하다는 것은 자주  변화했다는 것이다. In a higher world it is otherwise; but here below to live is to change, and to be perfect is to have changed often.” (J.H. Newman, An Essay on the Development of Christian Doctrine, London 1845, 39.)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이 말씀은 신명 18,13을 인용하신 말씀입니다.  비슷하게 레위기는 자주 “내가 거룩하신 것처럼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한다” (레위 11,44.45; 19,2; 20,7.26)라는 주님의 말씀을 전해줍니다. 구약에서 “완전하다תמים”라는 말은 “흠이 없이 온전한, 빠뜨린 것이 없는 전체”라는 의미로, 특히 하느님께 바치는 제물의 필수조건으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을 가리켜 완전하다함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 창세 6,9과 17,1은 ‘완전한 사람’에 대한 힌트를 제공합니다.

<BLOCKQUOTE>
- 노아의 역사는 이러하다. 노아는 당대에 의롭고 흠 없는 사람이었다. 노아는 하느님과 함께 살아갔다. (창세 6,9)
- 아브람의 나이가 아흔아홉 살이 되었을 때,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나는 전능한 하느님이다. 너는 내 앞에서 살아가며 흠 없는 이가 되어라. (창체 17,1)


성경은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가리켜 흠없는 삶, 완전한 삶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과 함께 살며 ‘하느님을 닮아가는 사람’을 가리켜 완전한 사람이라고합니다. 하느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때, 하느님은 사람을 어떤 수치로 계량화해서 재단하지 않습니다. 절대적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향해 움직이고 있느냐 ? 아니면 하느님께 대한 시선을 거두고 안주하거나 하느님을 등지고 걷느냐 ?" 입니다. 계량화된 수치로 무엇인가를, 누군가를 평가하는 것은 하느님의 길과 맞지 않습니다. 그런 하느님이시기에 나봇의 포도밭을 강탈한 아합에게도 자비를 보이십니다. 죄인에게도 햇볕과 비를 의인과 구분없이 선사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얼마wie viel” 혹은 “무엇was”이 아니라 “어떻게wie”를 물으시는 분이십니다. 되어간다는 것, 변화한다는 것이 변덕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분명한 목표를 향한 항구한 삶의 자세입니다.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어떤 상태에 놓여있든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걸어가는 자세, 안주하지 않고 하느님을 향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 되어가는 삶이 성덕에 이르는 길입니다.

요셉 흠이없는 삶. 온전한 사람. 이모두가 하느님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란 말슴처럼 제가 주님에게 기도드릴때 과연 가름침대로 삶을 살아가는지 에대하여 반성할수있는 강론 이었습니다
저보다 모자른 이에게 관대한 사랑으로 대하면서 오늘하루보 뜻있는 날을 보내도록하겠습니다 아멘~~
  201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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