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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homepage] (2010-06-17 19:57:41, Hit : 819)
< "우리"의 기도 > ::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H3>"우리"의 기도</H3>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① 집회 48,1-14 ㉥ 마태 6,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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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에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계속 이어가십니다. 그리고 기도의 표준이라고 할 수 있는 예를 들어주십니다. 이 기도를 보통 ‘주님의 기도’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서 “주님의 기도”라기 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우리의 기도”가 맞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 일상에서 드리는 ‘우리의 기도’가 이 기도의 모범과 점점 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때  “주님의 기도”라는 이름 자체가 “그런 기도는 ‘주님’이나 바치셈~ !”이라고 거부하는 듯한 뉘앙스를 주어서 더더욱 생뚱맞은 쪽으로 생각이 흐르곤 합니다.
     예수님은 “말을 적게하라”고 가르칩니다. 기도에는 많은 말이 필요없습니다. 말이 많아지는 것은 남을 설득하려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말이 많아집니다. 쉽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려운 말을 많이 합니다. 제 강론이 길어질 때는 사실 많은 경우 제 자신이 온전히 그날 말씀의 핵심을 집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기도의 전반부는 모두 비인칭 수동태 문장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역형으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고, 그분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열심히  일하셔!”라고 팔짱낀채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누가 그 이름을 거룩하게, 그 나라가 임하도록,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인가 ?를 들여다보면, 결국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역사에 참여할 소명을 깨우쳐 달라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나는 구경만 할테니 알아서 하시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기도를 바치며 우리는 “그분의 이름을 거룩하게, 그 나라가 임하도록, 그분의 뜻이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땅에 임하도록 동참”하도록 부르심 받았음을 상기해야합니다. 욕심없이 오늘 필요한 만큼의 양식을 얻기 위해 일하게 주시고, 내가 남을 용서할 준비를 갖추어 내 죄를 용서해달라고 청할 수 있는 염치를 갖게해주시고, 죄로 이끄는 유혹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이미 한 발을 들여놓았을지도 모를 악을 거부하고 당신께로 향하게 도와주시라는 청원이 우리가 드릴 기도의 전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첫 단어에 이 모든 내용이 담겨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하늘은 이 땅과 무관한 하늘이 아니라 이 땅과  맞닿은 하늘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은 너무나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하늘과 땅의 경계를 무너뜨린 분’, ‘당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내보이시고, 내어주신 분’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이미 당신은 끝없이 머나먼 다른 세상에 계신 분이 아니라 지금 내 곁에 계신 당신, 내가 당신의 자비를 바라는 것처럼, 나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는 당신이라는 고백입니다. 나의 기도는 그분을 설득하는 언변이 아니라 그분을 향한 나의 결심과 고백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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