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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homepage] (2010-06-25 04:38:09, Hit : 633)
<새 시대 새 인간> ::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H2>새 시대 새 인간</H2>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① 이사 49,1-6 ② 사도 13,22-26 ㉥ 루카 1,57-66.80

+ 찬미 예수님,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입니다. 요한은 “당신이 도대체 누구요 ?”라고 묻는 유다인들에게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이다.” (요한 1,23)라고 대답합니다. 그래서 주인이 오늘 축일을 맞는 이 홈페이지 제목도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입니다. 울림이 없는 텅빈 광야에서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으라고 소리를 질러대야하니 -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 ^______^;; - 그 소리가 오죽 시끄럽습니까 ? 그런데 성지순례로 집을 비우니 정말 고요하네요. 독일이 축구를 이긴 어젯밤은 예외지만요 ^^;; 모쪼록 집주인 신부의 건강한 사제생활을 위해서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이 민족주의라는 틀을 넘어서는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건이 “유배”라는 경험입니다. 유배라는 고난의 시간은 다른 한 편 보다 넓고 큰 시각으로 하느님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었습니다. 유다 산골마을이라는 우물을 빠져 나온 개구리, 그것이 유배가 끝날 무렵 이스라엘의 처지였습니다. 당연히 하느님에 대한 신학도 훨씬 깊고 폭넓게 발전합니다. 더이상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손바닥만한 ‘나와바리’에서 똥폼잡는 큰형님, 그 이상의 존재라는 사실을 깨우치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관념 속에 존재하던 세상보다 더 크고 넓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세계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의 유일한 주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느님이 아니라 세상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시라는 사유는 어쩌면 이스라엘의 고난의 역사라는 학교에서 학습된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스라엘이 세상 뿐 아니라 하느님을 바라보는 “판”도 더욱 넓어집니다. ‘우리만’잘 먹고 잘 살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들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가 ?가 신앙인들의 물음이 된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에 대한 답을 답을 제시합니다.
<blockquote>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이사 49,6)

‘민족들의 빛’, 이것이 유배의 기나긴 어둠의 터널이 끝나갈 무렵 이스라엘 민족이 깨달은 자신들의 소명입니다. 진화와 발전의 과정은 끝없는 도전과 극복, 그리고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그렇게 계속해서 궁극의 목표를 향한 간단없는 도전의 연속입니다. 사람도 역시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완성해나갑니다. 하느님의 계시도 역시 같은 구도로 풀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끊임없이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그분에 대한 사유와 해석, 즉 신학도 발전합니다. 요한은 이렇게 진보하는 구원의 역사 속에서 자신의 소명을 분명히 직시하고 추구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세례자 요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바는 매우 적습니다. 요한은 구약과 예수님을 연결하는 고리입니다. 예수님 스스로가 요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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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예언서와 율법은 요한에 이르기까지 예언하였다.” (마태 11,13)

그리스도교는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신 나자렛 예수, 그분이 이 예언의 실현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가리켜 옛 구원의 계약을 새 계약으로 완성하신 분, 율법과 예언의 현현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역사는 역사 안에 들어오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를 분기점으로 두 시기로 나누어집니다: 그리스도 이전과 (Before Christ) 주님께서 오신 이후 (Anno Domini). 하지만 요한과 예수님이 직접 만난 것은 세례 외에는  복음서에 보고되지 않습니다. 요한은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님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고자 합니다. “그러니깐 당신이 구원자가 맞는거 ?”냐고 (마태 11,2-6; 루카 7,18-23).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서를 간접 인용하시며 지금 여기에서 그 예언이 실현되고 있음을 보고 믿으라고 넌지시 대답하십니다. 믿음은 강요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단지 그 믿음을 불러 일으키는 표징들이 믿음을 가능하게 합니다. 눈에 보이는 사태 (event)가 가장 강력한 말 (verb)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돌아간 뒤에 예수님은 요한에 대해서 짤막한 언급을 하십니다.
<blockquote>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 마태 11,11; 루카 7,28)

요한 복음에는 예수님에 대한 요한의 증언이 더욱 강력하게 등장합니다 (요한 2,29-34). 요한은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세상의 역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음을 깨달았고 새로운 지평을 미리 보게 됩니다. 동시에 그 역사에서 자신의 역할과 한계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깨달았던 인물입니다. 사실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나마 알게된 자신에 대해서, 특히 자신의 한계에 대해서 솔직히 인정한다는 것은 더더구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요한은 다양한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던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막연하게나마 예수를 바라보았던 요한보다 이미 시작된 하늘 나라를 듣고, 믿고, 살고 있는 여러분은 요한보다도 이미 더 큰 인물입니다. 그 믿음을 제대로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더 큰 인물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파견되신 그 구원의 말씀”(사도 13,26)은 다시금, 요한을 통해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를 통해서 세상에 선포되고 실현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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