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1 1/203 회원가입회원로그인
  View Articles
 님께서 남기신 글 [homepage] (2010-06-28 01:04:40, Hit : 682)
<자유 !> :: 연중 제13주일 다해 (교황 주일)

<H3>자유 ! :: 연중 제13주일 다해 (교황 주일)</H3>
① 1열왕 19,16ㄴ.19-21  ② 갈라 5,1.13-18 ㉥ 루카 9,51-62

+
오늘 선포되는 말씀들의 주제는 선택과 결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1독서는 엘리야를 따라 나서는 엘리사의 이야기를, 루카 복음은 예루살렘을 향해 오르시는 예수를 따라나선 제자들에 관한 일화를 이야기합니다. 제2독서인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이 선택한 새로운 삶, 즉 그리스도인들의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루카 복음이 촛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예수를 따르는 길”을 선택한 이들의 결단입니다. 루카는 엘리야의 일화를 염두에 두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실제로 어떤 고대 사본들은 오늘 복음에서 제베대오의 두 아들이 예수님께 물은 질문에 “엘리야가 한 것처럼” (2열왕 1 참조) 이라는 말을 삽입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루카복음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베풀었던 관용을 제자들에게 베풀지 않음으로써 자신과 엘리야를 차별화합니다. 예수를 따르는 길은 엘리야를 따라 나섰던 엘리사보다도 더 큰 결단을 필요로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되짚어보면 우리에게는 수많은 판단 중에 우리 삶 전체의 전환점이었다라고 할만한 중요한 선택들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사람에 대해서건 일에 대해서건 한번쯤은 “내 인생을 모두 건” 선택들을 하게됩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질줄 아는 사람이 그 선택을 이루어갑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그 선택이 가치있는 것이 되도록 노력할줄 아는 사람의 인생은 후회가 없습니다. 사실 후회란 우리의 선택보다는 그 선택에 대한 책임에 대한 반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선택을 했느냐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나의 선택과 결심에 성실했느냐입니다.

구원이라는 대명제 하에서 신앙은 그 어떤 선택보다도 우리 삶의 가장 근원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런 고민없는 선택은 그 선택을 이루어가고자하는 치열함에 아무런 동인을 주지 못합니다. 즉, 지금 나의 선택에 대한 진지한 자세 없이는 내가 선택한 이 길을 성실하게 살아갈 확률도 그만큼 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한 사람들에게” 그러한 자세로 당신을 따라오라고 당부하고 계신 것입니다.

자유의 대헌장이라고 불리는 갈라티아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분명하게 다음과 같이 권고합니다.
<blockquote>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만 그 자유를 육을 위하는 구실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갈라 5,13)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그리스도인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은 곧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의 부르심입니다. 그 자유가 방종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내 마음대로 아무것이나 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선사하시는 자유는 하느님을 더이상 속좁은 관찰자, 감시자로 보지 않게 해줍니다. 나의 자유로운 선택이 나로 하여금 그 선택을 실현할 동기를 부여하고, 그래서 그 선택을 위해 노력할 때 우리는 진정 자유롭습니다. 남의 이목 때문에가 아니라 내 스스로가 나에게 떳떳하기 위해서 노력할 때 그는 자유롭습니다. 아무리 멋지고 아름답게 포장된 삶이라할지라도 내가 원하지 않은 삶, 혹은 나의 초심에서 내가 벗어나 내 선택이 지향하는 바를 망각했을 때, 혹은 마지못해 사는 그 삶은 결코 자유로운 삶이 될 수도 없고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선사하신 자유는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그 자유의 근원이 바로 세상과 인간을 향한 예수님의 자유로운 자기 헌신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진정한 자유와 해방은 법이 정하는 외적인 형식에 부합한 삶을 산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함으로써 완성되어지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예수의 삶은 그 표본을 제시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따르는 삶도 예수처럼 나만이 아니라, ‘우리’를 지향할 때 진정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지금 그럴 준비가 되어있는지를 묻습니다. 오늘 말씀들에 어울리는 시 한편 소개드립니다.
<blockquote>
자유

만인을 위해 내가 노력할 때
나는 자유이다
땀 흘려 힘껏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이다
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이다
피와 땀과 눈물을 나눠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맨날
밖으로는 자유여, 형제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詩, 김남주.    

그레고리오 아멘!!!..............아멘!!!   2010/06/29  






Prev  <교회의 두 기둥> ::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Next  <새 시대 새 인간> ::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u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