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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homepage] (2010-07-08 04:34:28, Hit : 787)
<사람의 얼굴, 하느님의 얼굴> ::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사람의 얼굴, 하느님의 얼굴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① 호세 10,1-3.7-8.12  ㉥ 마태 10,1-7.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던 사람들 중에서 12명을 따로 불러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줄 책임을 맡기십니다. 이 사람들을 가리켜 ‘파견된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사도ἀπόστολος’라고 부릅니다. 사도들의 숫자 12는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구성원인  열 두 지파의 숫자를 따라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유다의 빈자리를 굳이 매꾸려한 사도들의 의도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이 열둘과 이스라엘 백성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놓입니다. 사도들은 새로운 이스라엘 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의 주춧돌이자 기둥으로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복음서는 이 사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열거합니다. 예수님의 공생활 첫시작부터 그분을 따라나섰던 베드로와 안드레아, 그리고 제베데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 이외에도 다른 여덟명의 이름이 차례되는 호명되는데 복음을 묵상하다 보니, ‘영매-산자와 죽은자의 화해’에 나오는 단골네들이나 ‘위대한 침묵’에서 카메라를 응시하던 수사님들의 표정을 닮은, 그을리고 주름이 패인 다양한 군상들이 하나씩, 하나씩  다큐멘터리의 프레임들 속에 멈추듯 지나갑니다. 마태오 복음은 세리나 열혈당원 같은 특별한 인물들이 이 무리에 속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제일 마지막 자리에는 미래의 배반자 유다를 거명합니다. 뭐라할까 ? 머릿 속을 잠깐씩 스쳐지나가는 그들의 모습은 라테란 대성당의 기둥 밑에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선 대리석상들이 풍기는 위엄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그저그런, 어쩌면 ‘오합지졸’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그들을 당신의 수제자들로 삼으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당신께서 지금까지 보여주신 일들 (특히 마태 8-9장에 소개된)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십니다. 도대체가 바오로 같은 ‘먹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성질 급하고, 사람들에게 환영 받지 못할 것 같은 이 투박하기 그지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전령으로 선택되었을까 ? 의문투성입니다.

그런데 첫 이스라엘 역시 사도들과 똑같은 느낌을 줍니다. 문명을 발전시키고 세상을 호령하던  저 위대한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대제국들이 아니라 그 변방에서 이리 저리 치이던 보잘 것 없는 아람인들의 후손들이 주님의 백성으로 선택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가치판단에 의해서 잘나고 힘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못나고, 가방끈 짧고, 때로는 주인도 몰라보는 그 사람들을 하느님은, 예수님은 당신의 백성으로 당신의 사도들로 뽑으십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당신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십니다. 그들을 통해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이렇듯 하느님의 논리와 방법은 늘 인간의 예상을 빗겨나 있습니다. 그래서 신비입니다. 그 신비를 움켜주고 자신의 논리와 방법에 가두려할 때, 우상이 태어나고, 반역과 불신, 불의가 하느님의 선택을 부서뜨립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길이 아니라 인간의 길에 하느님의 길을 끼워 마추고자 할 때 하느님은 슬며시 뒷전으로 밀려나고 맙니다.

호세아 예언자는 정의와 공정을 멀리하고 하느님을 저버린 이스라엘을 향해 그분을 찾으라고 선포합니다. 하느님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 어쩌면 우리가 찾는 진짜 하느님은 우리의 골 깊은 주름 속에 숨어 계시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에 멈추게 됩니다. 내 부모의 주름진 손등에서, 내 형제의 눈물과 한숨에서, 아이들의 천진한 웃음에서, 사랑하는 이들의 다툼과 애증 속에,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닮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내 주위의 사람들을 사랑할 때, 내 안의 하느님이 당신의 얼굴을 드러내십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나에게 해준 것이다’ (마태 25,40), ‘나를 보았으면 아버지를 본 것이다’ (요한 14,9), ‘아버지와 나는 하나’ (요한 10,30) 라는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를 그분을 닮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 당신은 ‘우리’의 본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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