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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homepage] (2010-07-09 02:11:25, Hit : 685)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 네 가운데에 있는 거룩한 이> ::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① 호세 11,1-4.8ㄷ-9 ㉥ 마태 10,7-15

호세아 11장은 하느님의 백성으로 태어난 이스라엘의 지난 역사를 되집어 보면서, 지금 서서히 커져가는 강대국들의 위협속에서도 하느님을 저버리고 갈피를 못잡고 허둥대고 있는 이스라엘의 현재를 비판합니다. 예언자는 반역을 일삼고, 하느님을 몰라보는 이스라엘에게 파멸을 선언하지만, 곧바로 ‘철부지’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에 몸서리치면서도 그들을 향한 사랑과 자비를 거두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잘 드러냅니다. 그리하여 구원의 근본은 인간을 초월하여 있는 하느님의 ‘거룩함’에로의 초대라는 것을 분명히 선언합니다. 이스라엘은 ‘그 거룩함으로의 초대를 다시 되찾을 때’에 구원된 백성으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하고 선포하여라 !”
(마태 10,7)

파견의 주요 목적은 ‘하늘 나라’가 다가왔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의 선포가 다른 유다인들과는 구별되는 독창성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과 동시대 사람들 ‘하느님의 통치’가 인간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늘 나라’는 여전히 소원한 ‘언젠가는 올’ 막연한 미래의 사건이었습니다. 바리사이에게 있어서 ‘하늘 나라’는 완벽한 율법 준수로 하느님의 법이 세상에 구현된 이후에 오는 것이었고, 에세네파 사람들에게는 지상의 왕국이 정화된 이후에야 가능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지금 여기에 닥쳐왔다’라고 선포합니다 (마르 1,15).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거나 혹은 ‘지금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늘나라’가 그 때에만 완성되고 있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이미 그 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이 기다리던 그 사건, 그 때가 이미 사람들 가운데 한 발 한 발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지도, 감지하지도 못합니다 (루카 17,21 참조). 사람들과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은 지금 닥쳐오고 있는 그 새로운 세상을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우리 가운데 숨겨져 있는 그 나라’ (루카 4,18 참조)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그분의 말씀의 단비와 그분 사랑의 열기를 받아 크게 자라날 겨자씨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어떻게 그 나라를 선포해야할까요 ? 단지 말씀과 설교만으로 ?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의 표징은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서 드러나야 합니다: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태 10,8)

이는 제자들이 소외된 이들을 공동체에 받아들여야함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구체적인 연대의 실천은 그들을 외면하고 있는 사회와 종교를 동시에 비판할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최대한 짐을 줄이고, 단지 기쁜 소식을 들게될 사람들의 도움에만 의지하라는 말씀 역시 다른 설교자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예고함과 동시에 어느덧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시켜버런 공동체적인 연대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도록 비판하고 촉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신선한 충격’을 가져옵니다.

그분은 과거의 공동체 정신, 예컨데 환대와 나눔, 식탁을 둘러싼 친교, 소외된 이들에 대한 배려와 같은 경쟁사회에서 쉬이 잊고 사는 복음의 가치가 바로 하늘나라의 원리임을 선언하시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선포를 받아들이지 않을 사람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이를 잘 설명해줍니다. 그들은 어떤 새로운 교리나 진리가 아니라 자신의 과거, 자신들의 문화와 가치를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선포는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고, 사람들의 지혜를 회복하고, 공동체를 재건하며, 계약을 혁신하고 새로운 삶을 건설하라는 과제를 가져왔습니다. 조금만 더 ‘남들보다’ 잘 살아보겠다고 하나 둘 씩 폐기처분했던 고유한 공동체의 정신들의 본 뜻을 되찾으라는 초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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