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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homepage] (2010-08-07 05:04:59, Hit : 843)
<"Herr, cool ne !?"> ::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Herr, cool ne !?”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① 다니 7,9-10.13-14 또는 2베드 1,16-19 ㉥ 루카 9,28ㄴ-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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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입니다.

공관복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르시기 전 제자들에게 세차례에 걸쳐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셨다고 전해줍니다. 첫번째와 두번째 수난 예고 사이에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기사가 위치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특히 당신께서 아끼시던 세 제자,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산에 오르십니다 (마태 17,1–8 = 마르 9,2–8 = 루카 9,28–36). 신약성경에는 이 장소의 이름이 명백히 드러나 있지 않지만 그리스도교의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가 있던 곳은 지금의 타볼산이라고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기원후 4세기 이후의 기록들에는 타볼산이 거룩한 변모의 장소로 명백히 자리를 잡게 됩니다. 지금도 프란치스코회에서 관리하는 거룩한 변모 성당이 타볼산 꼭대기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이 곳에 오르면 너른 이즈르엘 평원의 초록빛을 바라 볼 수 있습니다.

갈릴레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 중간에 위치한 이곳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심으로써 예루살렘에서 겪으실 고난이 당신의 최후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알려주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여전히 수난 예고도 예수님께서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미리 보여주시는 이유도 제대로 깨닫지 못합니다. 그저 단순하게 예수님의 수난예고에 대해서는 거부를, 영광스러운 변모 앞에서는 안주를 택합니다. “주님, 그냥 여기에 눌러 앉읍시다 !”

주님께서는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 (루카 9,31)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제자들은 “지금, 여기에 집을 지을 생각”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베드로는 ‘두 사람이 예수님의 곁을 떠나시려는 찰나에’ 예수님께 청을 올립니다. 아마 “선생님, 모세와 엘리야께서 그냥 떠나시도록 내버려두시지 마시고 여기에 머무실 집을 지을 테니 어떻게 좀 붙잡아 두시면 안될까요 ? 아까 보니깐 엄청 친하신 것 같더만요!” 모세와 엘리야는 각각 율법서와 예언서, 즉 성경을 대표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고자 하시는 바는 바로 성경이 지향하고 있는 정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슷하게 예리고로 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부활하신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26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루카 24,25-27)

매일의 여정에서 우리는 다양한 모습의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살이도 하나의 여정입니다. 궂은 날이 있는가하면 맑은 날이 있고, 한참을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땀흘리다가도 반가운 소나기를 만나기도 합니다. 성경은 그래서 자주 이렇게 신앙을 하나의 여행으로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광야를 지나는 여정을 거쳐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고, 예수님도 여정중에 복음을 선포하시고 사도들에게 복음선포를 위한 여행을 떠나라고 명령하십니다. 교회는 여전히 세상을 속에서 이 순례의 여정을 계속 걷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차원원에서도 신앙생활은 하나의 여정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의 여정 중에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했듯이 우리 또한 이 여행중에 우리는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산 위에 머무시는 분이 아니라 이 여행에 동참하시고자 이스라엘 백성의 진지 한가운데에 세워진 ‘만남의 천막’으로 내려오신 분이십니다 (탈출 40,34-38). 나의 바람대로 ‘나만’ 독점할 수 있는 하느님이 아니라 나뿐 아니라 세상 속을 걸으시는 하느님, 내 뜻과 의지대로가 아니라 당신의 뜻을 알아듣도록 우리의 여정 중에 말을 걸어오시는 하느님을 우리는 구원 역사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여정의 초대에 응답한 사람들이 바로 우리 신앙인들입니다.

우리의 지난한 여정 중에 지치고 힘들 때, 나의 뜻, 나의 바램대로 하느님을 끼워 맞추고자 쌩떼를 부릴 것이 아니라, 그분이 계획하신 우리의 여정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앞장서 가시는 그 분을 잘 따를 수 있도록 우리를 변모시켜주시도록 기도합시다.

# 가까스로 접속이 안돼던 인터넷에 연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른 댁에서 쓰지 않는 광대역 접속 모뎀을 가져다 임시 방편으로 달아 놓긴 했는데... 언제 끊어질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일주일간 이곳 사제관에 인터넷이 안된다는 핑계로 원고를 적지 않아도 되니 편했는데... 하루도 길고...다시 인터넷이 작동하니 주인 신부의 명에 따라 에센 본당에서 진행되는 강론을 다시 올리기 시작합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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