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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homepage] (2010-09-09 03:22:12, Hit : 650)
<하느님을 낳은 응답> ::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하느님을 낳은 응답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① 미카 5,1-4ㄱ 또는 로마 8,28-30 ㉥ 마태 1,1-16.18-23 또는 1,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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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약성경의 맨 첫 장인 마태오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부터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에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까지 이르는 한 집안의 역사가 매우 단조로운 형식으로 나열됩니다: ‘갑’은 ‘을’을 낳고, ‘을’은 ‘병’을 낳고, ‘병’은 ‘정’을 낳고, 블라블라블라.... 마치 잠을 못자 억지로 울타리를 뛰어넘는 ‘양’을 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년 여름에 이태리의 산 베네데또라는 동네에 있는 공동묘지에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10여년 전, 처음 로마에서 공부할 때 알고 지냈던 가족이 있었는데 다시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이태리로 나오기 일 년 전쯤에 아저씨가 돌아가셔서 만날 수 없었던 차에 그분의 묘지에 방문했던 것입니다. 수많은 이름들 속에서 낯익은 한 이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조그만 사진과 짤막한 성경구절, 그리고 이름과 출생, 사망 일자를 새겨넣은 수 많은 돌판들을 보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나즈막히 불러 보았습니다. 지금은 모두가 그 돌판 하나로 흔적을 남기고 있지만 살아서는 누군가의 사랑하는 부모형제였을 것이고 더 오래전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스런 아이들이었을 그 사람들...

     그러고 보면 오늘 복음서의 지겨운 이름들도 그렇게 하나 하나가 살아 있는 역사였습니다. 소위 “뼈대 있는 가문 사람들”이어서 다들 거룩한 삶을 살고 훌륭한 모범을 남긴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사랑받고, 미워하고 미움 받고, 때로는 죄의 상처에 괴로워하다가도 용서의 기쁨을 누리기도 했던 우리와 그만 그만한 삶을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 속에 예수님이 끼어 들어 왔다는 사실을 마태오는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한 사람 한 사람이 빛바랜 사진처럼 속절없이 사라져가는 인간의 역사 속에서, 그렇게 잊혀져 가는 ‘그저’ 옛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느님 안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부활의 희망에 대해서, 구원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구원경륜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주셨습니다.” (로마 8,28-30)

     현행 로마 전례력에서는 하느님께서 역사 안으로 들어오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두 사람, 복되신 동정 마리아 (9/9) 와 세례자 요한의 탄생 축일 (6/24) 을 기념합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했고, 그 응답으로 하느님은 세상에 최고의 ‘선’을 이루셨습니다. 그 응답으로 말미암아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가 되었고, 그의 형제들인 우리의 어머니도 되신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리아의 응답을 거울 삼아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우리를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시도록 응답해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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