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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20-03-03 21:28:45, Hit : 134)
<바이러스와 니네베> 사순 제1주간 수요일 스승예수 수녀회

<사순 제1주간 수요일>

(INTRO)
오늘 복음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표징>입니다.
희랍어 ‘세메이온’으로 표기되는 이 단어의 원 의미는
“신적 구원을 드러내주는 표식”을 뜻합니다.
카인의 이마에 찍어주셨다는 그 표식이 ‘세메이온’이요,
다시는 물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 내려주신 무지개라는 징표가
‘세메이온’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 우리의 구원이시라면
그 표징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십자가이고, 십자가를 향하여 줄지어 선 이 사순절입니다.
그분의 표징을 더 깊이 새기기 위하여 오늘 미사에 온 정성을 모읍시다.

(강론)

<니네베>
마치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살아갑니다.
과학적 사실을 압도하는 불안과 두려움의 광폭한 질주가 인간을,
이성을 갈취당한 퀭한 눈망울의 초식동물로 전락시키고 있습니다.

사재기를 하고, 강력한 방패라도 되듯 마스크는 품절인지 오래고,
그 잘난 마스크 때문에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는 사람들이 100만 명을 넘어섰다지요.
어느 도시를 폐쇄해야 우리가 살고,
확진이 된 사람들은 마치 가슴에 주홍글씨를 새긴 죄인처럼 숨을 죽이며,
하루에도 수십 통, 그들이 다녀갔다는 동선이 마치 대전차 지뢰가 파묻힌
죽음의 통로라도 되는 듯 연일 쏘아대는 통에, 재난 문자가 오히려 재난이 되고 있는
이 기막힌 현실을 더 우롱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이러한 감염성 질병의 확산에
하느님의 이름을 갖다붙이는 무리들입니다.

마귀가 벌이는 짓이라는 둥, 인간의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라는 둥, 설레발을 치는 사이, 정말로 코로나19가 마치 인류가 단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었던, 천형의 영역인냥 확장되어 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구제역, 조류독감,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21세기를 시작하며 지난 20년 동안 우리는 숱한 변종 바이러스를 경험해왔고, 그 때마다 인간은 자가면역과 항생제를 강화하며 버텨냈을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중에 한 분도 죽지 않고 여태 살아 있습니다.

그럼 뭘까요? 뉴스만 틀면 쏟아지는 이 엄청난 정보량에 질식할 것만 같은 바이러스의 허장성세에서, 우리 신앙인들은 어떤 메시지를 촌철하여 짚어야 할까요? 왜 우리는 치사율 1% 미만, 그것도 대부분이 70대 이상의 기저질환을 지니고 있던 면역력 저하의 어르신들이 돌아가신 이 정도의 중증도에 이리도 움츠려들고, 올해 들어 미국에선 독감으로 사망한 사람들이 만명을 넘어섰는데도, 그 보다 훨씬 치사율이 낮은 이 바이러스에 이렇게까지 공포심을 확장시키는 것일까요?

<두려움.> 인간의 기저에 또아리 튼 두려움. 내가 가진 것이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날아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그 두려움의 밑동을 보아야합니다. 세련되고 고상한 방법으로 일구어 놀랍도록 진보한 세상이, 어찌 숙주가 없으면 생명체 축에 끼지도 못하는 한낱 미물 바이러스에게 속수무책 무너지고 있을까?

어쩌면 우리 현대인들의 삶이 이 작은 바이러스의 난동에서도 너무나 쉽게 허물어질만, 잔뜩 가지고 있으면서도 불안하고, 많이 배우고, 많이 먹고, 많이 쓰고 있으면서도 정작 생명 그 자체 대해서는 이토록 나약하리만큼, 위태로운 영혼으로 살아온 것은 아닐까?

나 하나 잘 되자고 남 어찌 되는 것 돌아볼 겨를도 없이, 그저 아이나 어른이나 각자도생. 기껏해야 제 새끼 하나 건사하는 게 대수요, 누가 떨어져 죽었다더라, 누구는 일하다 죽고, 누가 생때처럼 자식을 잃었다 해도, 그저 조용히 가만있으라, 종용할 줄이나 알던 그 걍팍하기 이를 데 없는 삭막함의 이면, 바로 삐까번쩍한 도시의 얼굴 안에 기생해 왔던 두려움의 본모습, 실체가 아니었을까?

불특정 다수인 나도 어느 날 갑자기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다는 막연한 불안. 그저 타인의 불행에서 중단되지 아니하고 스물스물, 나에게도 부지불식간에 감염될 수 있다는 그 두려움은, 정작 이 바이러스가 가지고 있는 치명성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게 합니다. 그저 나는 당하고, 걸리고, 찍히고 싶지 않다는 초식동물의 태생적 공포를 고스란히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지요.

마치 얼룩말 무리에 뛰어든 사자가 걔중에 제일 약한 한 마리를 쫓을 때는 사정없이 도망치다가도, 그 한 마리를 입에 물고 유유히 사자가 사라지면, 살아남은 얼룩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풀을 뜯던 그 섬뜩한 무관심이, 어쩌면 현대인들이 지니고 있던 솔직한 민낯이 아니었던가! 고백하게 됩니다.

표징이라면 바이러스가 표징이 아니라, 그 바이러스가 들추어내고 있는 인간의 복심이 바로 표징이겠지요. 바이러스가 지금 인간을 보게 합니다. 인간이라는 종자들이 지니고 있는 수준을 보게 합니다. 나라는 인간도 별반 다를 것 없이, 그저 이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게 무슨 큰 대수랍시고, 이날 이 때까지 참 질기게도 살아왔습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나, 자비와 애덕은 하느님의 얼굴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바이러스는 두렵지 않습니다. 다만, 나만 알고 살아가는 초췌하기 이를 데 없는 내 영혼의 몰골이 더 두려울 뿐입니다. 경계심과 무관심, 불안과 혐오와 차별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요나의 선포에 짐승들마저도 재를 뒤집어쓰고 자루 옷을 걸친 채 회개하였다던, 그 니네베가 어쩌면 지금 바이러스에 몸서리치는 이 도시보다 더 사람같은 사람들이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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