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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04-05-31 15:12:35, Hit : 703)
피정 다녀오겠습니다.

어제 지구 청년 미사를 마치고 동항성당 사제관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이래저래 고생한 동항 청년들도 격려하고 또 지구 신부들끼리 오붓하게 하루를 쉬고 난 다음 동항성당 근처의 동네 목욕탕을 찾았습니다.

동항도 그렇고 우리 동네도 그렇고 못사는 동네에는 조그마한 목욕탕들이 많이 있습니다. 집에서 씻을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골목골목마다 공동화장실을 쓰는 그런 동네에서 문득 옛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목욕가던 그 때에는, 정말 목욕은 일주일에 한 번만 하면 되는 건 줄 알았습니다. 당연히 옷도 일주일이 되어야 갈아입을 수 있었지요. 그 때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줄 알았습니다.

주일날 새벽이 되면 아버지는 아들 둘을 때려 깨우십니다. 그리고는 잠도 덜깬 아들들을 데리고 목욕탕에 가시며 그러십니다. 빨리 안가면 물 더러워진다고... 새벽같이 달려가서 목욕탕 물을 제일 먼저 트십니다. 그리고는 푹 삶아낸(?) 두 아들을 득달해서 자장면 면빨같은 때를 벗겨주십니다...

아프다고 인상쓰고... 마냥 냉탕에서 물장구치는 것만 좋았던 그 때... 아버지는 참 큰 사람이었는데... 동네 목욕탕에서 목욕을 마치고 아직도 이른 아침, 병에 든 "서주우유"하나에 온 세상 다 가진 것처럼 청명했었는데...

오늘 허름한 목욕탕에서 몸을 담그다... 슬쩍 눈물이 났습니다.

목욕으로 육신의 때를 벗꼈으니 이제 피정으로 영혼의 땟자국까지 벗기고 돌아오겠습니다.

일기장과 발자국 소리에 많은 삶들... 남겨주세요.

모두 건강하시구요...

목욕으로 얼굴 더욱 뽀사시해진 조신부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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