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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05-09-18 01:26:56, Hit : 937)
한가위, 축복 듬뿍 받으시기 바랍니다. <한가위 미사 강론>

<한가위 강론>

<道理>

도리가 있습니다. 사람이 걸어야할 길을 도리...라고 하지요. 하늘로부터 점지 받은 생명으로 나서 그 도리를 깨닫고 도리를 살다 결국 다시금 하늘로 돌아가는 길이 결국 사람 노릇하고 사는 도리의 기본 골격입니다. 부모는 부모된 도리를 해야 하늘로 올라가는 길을 걷는 것이며 자식은 자식된 도리를 해야 하늘과도 맞닿을 수 있는 것이 사람 사는 이치입니다.

제 아무리 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하지만, 그래도 자손들이 이 도리를 다하고자 모이게 되는 명절은 그야말로 사람이 나서 결국 사람이 왜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대단히 귀한 깨달음의 장이라 할 것입니다.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는 말도 못하고 사는 것이 태반이요, 내 먹고 산답시고 사람 짓도 못하고, 형제면서도 남만도 못하게 살고, 친척이면서도 이웃만도 못하게 사는 일이 태반인데 이렇게 막상 돌아가신 조상님 영전 모셔놓고 형제들이 모여 밥 한 술 뜰라치면 뜨악하게 목 메여오는 까닭이 있습니다.

지나간 역사는 언제나 나의 스승이었던 것처럼, 우리가 차례를 지내고 또 제사를 모시는 그 모든 분들 역시도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이 퍽퍽하기 이를 데 없는 땅을 딛고 살았을 사람, 그러면서도 미우나 고우나 나를 있게 했고 내 생명이 이어지도록끔 베푸셨던 분이니 그 분 앞에 무릎 꿇을 적엔, 왠지 지금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가... 하는 염치를 지울 길이 없습니다.

저는 할아버지를 한 번도 뵙지 못했습니다. 그저 어린 시절 아버지 손목 잡고 “여기가 네 할아버지 누워계신 곳이다...” 시며 당신도 따뜻하게 받아보지 못한 사랑 마치 대단히 그리워하시듯 거기 난 잡초들을 일일이 손으로 뽑으시던 아버지만을 만났을 따름입니다.

가끔 그 살아오신 삶이 고단해보여 불쌍하게 여겨질 때도 많고 또 때로는 당신도 참 외롭게 걸어 오셨겠구나... 싶어 가슴 아플 때도 있었지만, 왠지 할아버지 무덤 앞에 서 계신 아버지의 모습은 결국 그 둘이 완전히 다른 모습의, 각각의 존재들이 아님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아버지를 통해 또 다른 아버지를 만나게 해주셨던 것이지요.

아버지의 아버지가 참으로 이런 삶을 사셨고, 아버지의 또 아버지가 이러한 인고를 걸어내셨을 것입니다. 그랬기에 지금의 내가 이렇게 있는 것은 분명했지만, 너무나도 당연해 보이는 그 역사가 막상 당신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있는 또 다른 아버지의 모습으로,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다시 그 뒷모습 닮아가야 함을 생각하면 이 어이 숭고하다 하지 않겠습니까?

신문지로 정성스레 싸놓은 낫자루를 받아쥐며 이제 이것을 제가 물려받을 때쯤, 당신은 당신 생명 풍성히 자손들에게 나누어주시고, 때로는 그 무너지는 억장 아무도 몰래 눈물을 훔쳐내신 그 소매로 도리어 저를 다독거리시겠지요.

때로는 이 세상 사는 것이 너무도 힘들어 약 먹고 죽고 싶었을 때, 그 때 아버지 산소에 가서 죽으려고 약병을 여는데, 차마 부모 아래서 그렇게 못하겠더라... 하시던 숱한 아버지들의 각오처럼 이승과 저승은 이날만큼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은 이날만큼은 하나된 친교를 나눕니다. 그래서 대단히 축복스런 날, 우리가 명절을 기뻐하는 이유입니다.  

그렇습니다. 명절엔 참으로 잘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게 살던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고마움을 더 잘 통하셨으면 좋겠고, 죽어도 완전히 죽어버려 기억조차 않던 그들을 깨워 만나야할 시간, 산 사람과 산 사람이 통하고 산 사람과 죽은 사람도 통하는 시간, 하늘이 열리고 땅도 열리는 그런 만남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일, 내 것 생각하며 사느라 만나지 못한 인연들 아니었습니까? 내 목구멍 포도청이라 하지만, 가만히 따지고 보면 내 배가 고파 포도청이 아니라 내 배를 더 불리느라고 나는 언제나 포도청 아니었습니까?

손 위, 손 아래. 내가 기준 되면 제대로 펼치지도 못했던 사람들인데, 시누이들은 딩굴거리며 오만 심부름 다시키고 뺀질거리는 동서들은 잘도 놀러다니다가 이 명절만 되면 아가 아프고 자기가 아프고 돌아가며 셋트로 아프다고 코빼기도 안보이지만, 그래서 나만 맨날 설거지물에 손 담그는 이 명절이 싫다... 하시지만, 그래 그 도리 밖에 모르고 사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그 도리로만 남는기라, 나는 내 사는 도리로 하늘로 오르고자 함인데, 어찌 하늘의 도리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하고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가만히 따지고 보면, 일 년에 몇 번 만나지도 않는 사람들 때문에 너무 속상해도 마시고, 그래 만나지 못할 사람으로 두고 사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빈 손 되면 못 만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시고 부지런히 내 손에 든 것들 잘 비워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복음에서나 그리고 우리가 이 미사 후 봉헌할 조상들을 위한 연도에서나 조상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잘 베풀고 잘 나누고 잘 사랑하고 돌아오라는 그것 하나뿐입니다.

이게 안 되어서 그토록 괴로운 삶이었는데, 막상 관뚜껑을 열고나니 다른 것은 넣을 자리가 없어. 그저 이 한 많은 몸뚱아리 누이기도 부족한 거기에 뭐 그리 덕지덕지 붙은 것은 많은지, 싸그리 불태워 훨훨 날려 보내고 나면, 나 다시 왔던 그 빈손으로 잘 되돌아가면 그만, 다들 아서시게... 그리 짊어지고 있네 없네 사네 못사네 모자라네 넘치네... 하지만 그 모든 것 일순간 내 것 아닌 것으로 남을 날이 올 터이니... 이렇게 차례상 올리면서도 그것을 못깨닫고 서로가 음복을 하면서도 그 진리를 못 깨우치면 그게 어디 사람 도리라 할 것인가...

그러니 더 잘 만나야 합니다. 산사람은 지금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과 정말로 잘 만나셔야 하고, 그리고 죽은 사람과도 잘 만나셔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과 땅이 만나고 또 땅과 땅 속이 만나 일년 중에 이날만큼이라도 하늘이 열리고 땅이 열리는 그런 하루로 사셔야 합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마저도 내 것이라고 담아놓고 싶은 인간 심보들이 오늘 휘영청 달 밝은 밤에는 참 많이 부끄러워집니다. 저 달 보며 소원풀이를 해야할 일이 아니라 도리어 달 보며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니 가장 받고 싶은 추석 선물 1위가 갈비셋트라고 합디다. 그런데 가장 많이 팔린 선물은 비누셋트가 1위랍니다. 마음은 갈비셋튼데 몸은 비누셋트인 셈이지요. 단지 경기가 어렵고 물가가 올라서만은 아닐겝니다. 가만히 생각해보십시오. 이날 이때 꺼정 경기가 좋았던 명절이 언제 한 번 있었습니까? 매년 명절만 되면 최악의 경기였습니다. 그래고 명절 때만 비싸지는 물가였습니다.

그러고서도 우리는 묵묵히 이 명절을 이어옵니다. 왜입니까? 세상은 이 경기가 싸늘해지는 것만큼 매년 1도씩 그 온도가 내려가지만, 그래도 비누 한 장이라도 손에 들고 내 고마운 사람, 살아서 그 도리 못다 이르고 산 사람, 그리고 죽어서도 내가 못 잊을 그 사람들에게 베풀어 내는 우리 심장의 온도는 여전히 1도씩 올라가기 때문 아닙니까?

너무 영악스레 움켜쥐지 마시고 손끝에 다함께 물 묻히며 이 명절에 한 신세들 잘 갚아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가위란 말도 거기서 나왔답니다. 크게 신세를 갚는다... "가베"...라는 말이 그 원뜻인 것을 보면, 우리네 조상들도 이것만큼은 대단히 성실히 챙기셨나봅니다.

사람으로 나서 사람 도리를 살고 그 도리 끝에 하늘 길이 열리는 세상, 어쩌면 오늘 우리가 정성껏 분향을 하고 마음 다해 기도하는 것 또한 그 세상을 바라보기에 더 귀한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좋은 명절입니다. 모든 분들 축복 듬뿍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한애경 추석날 군대간 아들 전화를 받고 친정에 전화를 걸어봤더니 삼촌들이 기분이 안좋게 하고 갔다는 소리를 듣고 오늘 강론말씀중에 추석을 맞아 감사하고, 서로 친교를 나누며, 나눔의 정신이 한가위정신이라는 말씀이 생각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서로 이해하고 쌓인 것들은 풀고 있는 모습그대로를 인정해 주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제 생각인가 봅니다. 그래도 주님! 오늘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용서를 주시고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빌어봅니다.   2005/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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