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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소리 님께서 남기신 글 (2004-04-16 19:19:46, Hit : 950)
한바탕 웃음으로 - 사순 4주간 금요일

<사순 제4주간 금요일 강론>

<한바탕 웃음으로>

저의 방 창문 밖은 범일 성당 유치원인 소화데레사 유치원의 마당입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아이들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시끄럽다고 인상만 쓸 수도 없고 해서, 제가 맘을 바꿔먹기로 하고 아이들이 마당에 나와 노는 시간은 저도 그저 멍하니 창 밖을 바라다보며 아이들 뛰노는 것을 '평화롭게' 쳐다보기로 했습니다.

한 몇 일,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관찰해보니 보면 볼수록 신기하였습니다. 특별한 장난감도 없습니다. 그저 낡아빠진 미끄럼틀과 삐꺽거리는 모형 말, 그리고 마당의 모래가 전부입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그곳에서 매일 한 시간을 거뜬히 놀고 있습니다. '거뜬히'가 아니라, 아마 선생님이 '애들아, 모여라' 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이라도 그렇게 놀 태세들입니다.

그저 모래를 조물거리다가 다시 허물며 까르륵 넘어가고, 뭐가 재미있는지 또 모래를 쌓고... 그러다 갑자기 내팽겨치고 마당을 뛰어다니다 넘어지면 또 비명을 지르고 또 까르륵 넘어가고... 아마 어른들을 그곳에 한 시간만 '가두어' 놓으면, 열의 아홉은 그늘 찾아 병든 닭 모양으로 졸고 앉아 있을터인데... 아이들은 역시 달랐습니다.

특별한 룰이 없어도, 특별한 놀이기구가 없어도 아이들은 자유롭게 놀 줄을 압니다. 자유를 만끽할 줄 압니다. 그러나 이런 아이들도 조금만 더 자라나면, '그냥 노는 법'을 잃어버립니다. 꼭 무엇을 하며 놀아야 재미있는 줄 압니다. 규칙을 정하고, 어떤 기구를 가지고 뭘 하며 놀아야 하는지... 게임이다 뭐다 참... 놀기 위해 필요한 것도 많아졌습니다.  

좀더 자유스러워야 하는데, 어른이 되어갈수록 이 자유라는 큰 즐거움을 잃어버리기 일수입니다. 자유를 제한하는 무수한 틀이 점점 나의 삶을 가로막습니다. 그 틀들에 익숙해져 가며 우리는 자유를 대체할 새로운 가치들을 '억지로' 끼워 맞춥니다.

'의무와 책임', '형식과 규율' 등을 학습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학습들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권위"라고 믿습니다. 학생으로서의 권위, 어른으로서의 권위, 가장으로서의 권위 모두는 형식과 틀을 맞출 줄 알 때, 비로소 '획득'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권위는 새로운 방식으로 사람을 제한하기 시작합니다. 권위를 지닌다는 것은 사람들이 요구하는 일정한 수준의 틀을 수행한다는 소리와 동일시됩니다. 그래서 권위 있다는 사람들은 모두가 근엄한 얼굴, 엄격한 얼굴, '죽은 얼굴들'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 없이, 자유 없이...

예수님의 권위는 전혀 다른 차원의 권위입니다. 유다지방으로는 '다니고 싶지 않아서' 가지 않던 그분이, 어느 날은 뜬금없이 유다 지방의 한 가운데인 예루살렘을 활보하고 다니십니다. 조용히 계시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 앞에서 거침없이 일성(一聲)을 내지르십니다. 도리어 그를 잡으려던 사람들이 조바심을 냅니다. '정말 뭐가 있는 사람이 아니야?' 싶어 도리어 그 권위 있는 사람들이 숨을 죽입니다.

그런 예수님에게 누군가 묻습니다. "그리스도라는 예수여, 당신은 왜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이곳에서 버젓이 돌아다닙니까? 그리고 왜 당신은 뭘 믿고 그렇게 거침없이 행동하십니까?" 아마 예수님의 대답은 이러하였을 것입니다.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저 자기가 불고 싶은데로 불고 가고 싶은데로 갑니다. 나 역시 마찮가지입니다. 그저 아버지께서 가라하니 가는 것이고 아버지께서 하라 하시니 또 하는 것입니다. <그냥>입니다. <그저>입니다."

진리란 어쩌면 틀에 담을 수 없는 권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틀 속에 정형된 진리란 이미 '상식'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므로, 진리란, 생명이란, 자유란... 어디서 불어오는 바람인지 모르는 것처럼... 바람처럼 그렇게 살 때, 비로소 체득할 수 있는 낱말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이들이 한 바탕 놀다 떠나간 자리에 가보았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 아이들이 만지고 웃고 떠들던 모래 한 줌을 쥐어보았습니다. 이제 그 아이들처럼 해맑게 웃을 수 있으면 되는데... 그렇게 "그냥" 웃는 법을 저 역시 잊어먹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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