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1 1/203 회원가입회원로그인
  View Articles
광야소리 님께서 남기신 글 (2004-04-16 19:21:55, Hit : 1346)
향유와 짜장면 - 성주간 월요일 강론

<성주간 월요일 강론>

<향유와 자장면>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어 씻겨 드리는 이 장면은 4복음서가 공통적으로 전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루가를 제외하면 세 복음서에서는 모두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하는 대목에, '이것은 내 장례일을 위하여 하는 일이다.' 라고 하시며 당신에게 닥쳐올 죽음을 예언하십니다.

이 여자의 정체에 대해서도 각 복음서는 그 의견들을 달리합니다만, 공통적인 것은, 당시 발을 씻겨주는 사람은 노예나 하인들의 몫이었던 것처럼, 다른 복음에서는 이름 하나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하찮은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 이 하찮은 사람이 사용한 삼백 데나리온 어치의 향유는 역설적입니다. 한 데나리온이 당시 하루 일당이었다고 하니, 한 40,000원만 쳐도 지금 돈 1,200만원에 해당하는 최고급 향유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귀하다는 소리겠지요. 하여튼 요한 복음에서만, '마리아'라 불리운 이 여자는 비싸고 귀한 이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아드립니다.

당신 죽음의 준비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하찮은 사람, 루가에 의하면 '지독한 죄녀'의 손에 의해, 당신은 죽음은 준비되어집니다. 눈물과 가난한 사람의 향유가 예수님 죽음의 서막인 셈입니다.

얼마 전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명장동에서 중국집을 하는 미카엘 형제님이셨습니다. 이제 세례 받은지 3년이 갓 지나셨는데, 벌써 6년 전부터 아미동에 있는 성모마을에 한 달에 한 번씩 자장면 봉사를 하고 계신 그런 형제님이십니다.

이분이 글쎄, 한 달에 한 번 봉사로는 부족한 것 같다며, 당신 가진 것은 자장면 밖에 없으니까, 봉사할만한 적당한 곳을 좀 물색해 달라는 전화였습니다. 참으로 대단하시다 싶어 알았다고 하고는 전화기를 열심히 돌렸지만 천주교 재단에서는 고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점심 봉사가 가능한데, 점심때는 사람들이 없는 곳이 많고, 또 대부분 시외 지역에 있어 거리가 멀고... 하여, 송도에 있는 불교 계통의 천마 재활원을 추천해드렸습니다. 그곳 원장님과 통화를 하고, 그쪽의 주방도 미리 확인할 겸하여, 형제님께서 성모마을에 봉사하는 날 만나 자장면 봉사를 끝내고 함께 천마 재활원을 방문하기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형제님을 면을 뽑고 저는 시다바리로 면을 씻고 하여 자장면 봉사를 끝낸 후에 짐을 챙기려고 형제님의 차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형제님이 그러십니다.

"신부님 저 차 처분했습니다." "아니 왜요?" "왜긴요... 장사가 안되어서 그렇지요... 별걸 다 물으시네... 신부님도 차 없으세요?" "아니요. 그럼 제 차로 가시지요."

가는 길에 물었습니다.
"아니, 차를 처분하실 정도로 장사가 안되시는데 또 다른 곳을 봉사하러 가시려구요?"

형제님왈, "어짜피 노는 날 아닙니까? 그리고 저는 이미 하느님에게 받을 만큼 다 받은 사람입니다. 어디 차 없다고 봉사 못 다닙니까? 이고 지고 다니면 되지..." 하십니다.

"미카엘 형제님은 저의 자장면 사부가 되실만한 자격이 있으십니다. 이제는 이 신부를 자장면빨 시다바리로 아낌없이 부려 주십시오." 제가 그랬습니다.

글쎄요... 참으로 하느님께 감사할 줄 알고, 그 감사 때문에 자기의 몫을 아낌없이 내어놓을 줄 아는 사람은, 과연 하느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은 사람일까요? 애석히도 그런 사람들은 내 모든 것이 하느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모두가 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있는 것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기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자라다고 도리어 불평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정작 봉사는 바쁜 사람이 하고, 정작 봉헌은 없는 사람이 합니다.

은총도, 자기가 은총 받은 줄 아는 사람에게라야 빛이 나고, 용서도 내가 용서받았음을, 이것이 얼마나 큰사랑임을 깨달은 사람에게라야 그 용서가 실천됩니다. 내가 이미 그보다 더한 것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았음을 제대로 깨달은 사람만이 크게 용서할 수 있고, 크게 봉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하찮은 여인네의 1,200만원짜리 향유... 이제는 그 여인이 왜 그리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어드렸는지 그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그나저나, 이제는 자장면 면 씻는 기술부터 다시 배워야 할 판인데... 벌써부터 걱정이 앞섭니다.

참 세상에는 배울 일도 많고, 그리고 배워야할 선생님들도 참 많이 계십니다. 그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아멘.







Prev  어중이떠중이 - 성주간 화요일 강론 광야소리
Next  천국의 열쇠 - 성지주일 강론 광야소리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u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