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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7-08-21 06:18:21, Hit : 349)
<피서> 콜핑 수련회 미사

<콜핑 수련회 미사>

(intro)
1848년 아돌프 콜핑 신부님이 독일 부퍼탈에서 도제공 조합 운동을 시작하시고 돌아가시기까지(1865) 17년 동안 무려 418개의 조합과 25,000명의 조합원을 그분을 따르게 되었는데, 출발은 먹고 사는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콜핑 프로그램은 단지 열악한 노동자들에게 먹고 사는 것 속에 감추어진 영성의 길을 비추어주었지요. 먹고 사는 것에 함몰되면 무엇이 바르고 옳고 정당한 것인지가 사라집니다. 200년 전 도제공 조합의 모토는 현대사회의 시각에서는 놀라울 것이 없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 성실한 직장인. 좋은 부모. 정직하고 선량한 시민>이 되자. 이것입니다. 너무 단순하지요? 하지만 이 단순한 것이 먹고 사는 문제를 관통하기까지 아마도 이만큼의 세월이 더 필요했는지 모릅니다.

모처럼 떠나와 자리를 폅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좋겠습니다. 다만 우리가 가는 이 원론적인 길이 다시금 복잡하고 흩틀어졌던 지상에서의 시간들을 한 번쯤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 미사를 시작합시다.

(강론)

<계곡의 피서>

피서를 왔으니 저도 피서이야기 하나 해드릴께요. 어릴 적에 삼촌이 일찍 돌아가셨어요.  적잖이 먹고 살만했던 친지들도 있었는데, 그 집 아이들 셋을 내몰라라 하자 제 모친이 당신도 단칸방에 아이 셋 키우면서 조카들 셋까지 떠맡으셨습니다. 부모님 포함해서 모두 여덟 명이 단칸방에서 여름을 난다 생각해보십시오. 예날 스레트 집은 또 천정이 얼마나 낮았어요. 정말 가출하고 싶었습니다. 그 때 어머니가 피서 가자고 하시더군요.

없는 돈에 멀리는 못가고 동네 뒷산에 올라가면 계곡(말이 좋아 계곡이지 그냥 산에 있는 흔하디 흔한 냇물 정도 되는 곳)이 있는데 그리로 여덟 명의 식구가 대이동을 한 것입니다. 거기에다 텐트를 쳤습니다. 3박 4일이 아닙니다. 여름 방학 내내!

아버지는 일하고 오시면 산으로 퇴근을 하셨지요. 어머니는 빨래감을 이고지고 이모 집에 가서 빨래를 해오셨고, 아이들은 여름 방학 보충수업이 끝나고 나면 이웃집 가게에 맡겨놓은 수박이니 반찬과 쌀을 이고 산으로 출퇴근하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이건 피서가 아니다! 이게 뭐냐! 친구들에게는 우리 집도 여름 피서 간다고 자랑했는데, 막상 나와 보니 이건 노숙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반항해봐야 뭐하겠습니까? 이미 온 가족이 가출한 마당에 다시 가출할 수도 없는 노릇, 좁디좁은 개울가에 일가족이 텐트를 치고 여름 내내 죽을 치고 있으니, 이거 동사무소 가서 신고해야 하는 것 아니야? 그래야 어머니가 정신을 차리고 우리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사촌들과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꿋꿋하셨습니다. “얼마나 좋냐? 여기 있으니까 전기세가 나가냐? 물세가 나가냐? 반찬 없어도 밥도 맛있지, 남들은 돈 들여서 바다로 산으로 피서다 떠나는데 우리는 돈도 안들이고 여름 내내 피서니 얼마나 좋으냐!”

그 때 다짐했지요. 이놈의 집구석과 내가 피서란 걸 가나봐라! 그렇게 여름을 났습니다. 없는 사람들 더 섧게 살아야 하는 계절이 여름이지요, 그래도 그 여름에도 함께 멱 감으며 웃고 떠들다보면 산 속의 밤은 저녁을 먹기도 전에 서둘러 찾아오곤 하였습니다.

지금 제가 장성하여 부모님께 감사드리는 것 중에 가장 큰 것은 공부시켜 주셨다거나, 없는 형편에도 먹이고 입혀주신 것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 저에게 가난을 잘 가꾸어주신 것입니다. 가난했는데 부끄럽지는 않았습니다. 별의 별 유쾌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게 고맙습니다. 덕분에 사실 저는 아주 부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하게 사는 게 겁이 안납니다.

한국사회의 가장 큰 불행은 가난을 저주로 만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조선왕조 500년사의 대부분은 보릿고개였습니다. 그렇다면 그것 때문에 그들은 불행하기만 했습니까? 지금은 그 시절과 비할 바 없는 것을 먹고 삽니다. 그렇다면 그것 때문에 우리들은 행복합니까?

물론 가난을 풍요로 바꾸는 것은 분명한 발전이지요. 하지만 가난이 지닌 정신적 가치를 저주로 만들고, 인간의 정신을 팔아서라도 먹고 살게 만드는 것을 진리로 포장시킨 세상은 발전이 아니라 명백한 퇴보입니다. 지금은 이것이 문제입니다. 세상이 쓰레기가 아니라 정신이 썩어빠진 천박함이 진동을 합니다.

그렇게 당해놓고도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언제쯤 한국사람들은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 인간이 아무리 잘 먹어도 하루 세끼 이상 못 먹고 살구요, 제 아무리 그럴싸 한 걸 걸친다 한들 그 값이 사람값을 넘을 수가 없구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제 돈 다 쓰고 가지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인간들은 아직도 먹고 사는 타령만 합니다. 30년 전 계곡 속에 앉아 온 여름 다 보낼 적에도 안 하던 고민을 에어콘 펑펑 틀어놓은 방구석에 처박혀 하고 앉아 있습니다. 제 하나 더 잘 먹고 더 잘 사는 그것 이상을 고민해본 적이 없는 인간들은 그저 조금의 손해도 보기라도 할라치면 야단법석을 피웁니다.

배운 것은 훨씬 더 많이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인간들이 처신하는 꼴을 보면 참 경망스러워졌습니다. 그저 저 하나 잘 되면, 저 하나 이기고, 저 하나 승리하면 그게 최고인 줄 압니다. 이제는 그렇게 사는 것이 좀 식상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단단한 지혜가 필요합니다. 굳센 슬기가 필요합니다. 생명의 본질을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누구도 자기 살을 먹고 자라지 않습니다. 풀 한 포기도 그렇습니다. 남의 것을 먹어야 사는 존재가 생명입니다. 인간은 더 할 나위가 없습니다. 인간이 나기까지 인간이 장성하기까지 그리고 인간이 소멸하기 직전까지도 인간은 나 아닌 것을 먹어야만  사는 존재입니다.

부모를 먹고 자랍니다. 맞는 말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식탁을 보십시오. 그 가운데 단 하나라도 아버지의 땀방울 없이 차려진 식탁은 없고, 없는 살림에 반찬 하나라도 더 얹으려던 어머니의 눈물 없이 차려진 식탁은 없습니다. 우리가 먹었던 것은 밥 한 공기가 아니라 아버지의 땀이었고, 우리가 마셨던 것은 국 한 사발이 아니라 어머니의 눈물이었습니다. 그것을 먹고 자라 인간이 사람이 된 것입니다.

누군가 애썼던 농작물을 먹는 것이고 내 대신 죽어간 누군가의 고기, 남의 살을 먹는 것입니다. 밀이 부수어지고 포도가 으개진 빵과 술을 먹는 것입니다. 내가 먹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내가 먹히는 것은 참지 못합니다. 지는 것, 먹히는 것, 밥이 되어주는 것은 실패요 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그렇게 자기만 먹고 먹어서 배 터질려고 삽니까?

아닙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밥이 되어주기 위해 사는 것 아닙니까? 그 때 비로소 내가 가진 생명도 제 값을 하고 제 꼴을 하고 제 가치를 다하는 것 아닙니까! 평생을 살고 난 다음, 내 생명이 지닌 의미와 가치를 여러분은 어디에서 찾으실 것 같습니까?

내가 이기고 성공하고 잘 먹고 잘 살았던 것에서 찾을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내가 조금이라도 밥이 되어주었던 것, 그것만이 내 인생의 보람이 될 것입니다. 먹이기 위해서 고생했던 것, 극복하기 위하여 노력했던 것, 나누기 위해서, 보태기 위해서, 섬기기 위해서, 봉사하기 위해서, 그렇게 내가 타인에게 밥 되어주기 위해 눈물겹도록 애썼던 그것만이 의미가 될 것이고 가치가 될 것입니다.

저는 시로페니카아 여인의 이야기를 들을 적마다, 내 부모를 떠올립니다. 자식을 위해 누군가에게 무릎을 꿇었을 숱한 부모들의 이야기에 저는 반드시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가 함께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무릎 꿇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콜핑이 됩니다. 우리가 잘나고 똑똑해서 누군가를 가르치고 선도하고 계도 및 계몽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무릎 꿇는 사람들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래야 합니다. 그래야만 오늘 이 복음이 우리에게 힘이 될 것입니다.



루시아 아멘~ 신부님 힘주시는 말씀, 감사합니다.
어린 시절 가난의 영성을 키워주신 멋진 어머님이 계셨기에
짱 멋지신 우리 신부님이 계셨네요. 가난했지만 하느님의 멋진 부자 성가정이셨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성당다니면 돈을 주나? 먹고 살게 해주나?" 물었을 때
확신을 가지고 "그럼요. 하느님께서 당근 잘 먹고 살게 해 주십니다." 한 적이 있었습니다.
가난해도 부자로 지낼 수 있는 힘!!! 주님의 은총같습니다. 알렐루야~!!
  2017/08/31  
루시아 평생을 살고 난 다음, 내 생명이 지닌 의미와 가치를 여러분은 어디에서 찾으실 것 같습니까?
내가 이기고 성공하고 잘 먹고 잘 살았던 것에서 찾을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내가 조금이라도 밥이 되어주었던 것, 그것만이 내 인생의 보람이 될 것입니다. 먹이기 위해서 고생했던 것, 극복하기 위하여 노력했던 것, 나누기 위해서, 보태기 위해서, 섬기기 위해서, 봉사하기 위해서, 그렇게 내가 타인에게 밥 되어주기 위해 눈물겹도록 애썼던 그것만이 의미가 될 것이고 가치가 될 것입니다.
아멘,아멘!! 알렐루야~
  2017/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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