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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7-09-04 07:47:58, Hit : 315)
<고향>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고향>

휴가라 본가에 가서 한 주간을 보냈습니다.
다리도 다친데다,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어릴 적 동네 이발소에 가 염색을 했지요.
일흔을 넘긴 노 이발사가 꼬맹이 때 그 분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났지만
흰 머리를 염색을 하느라 거울 속에 있는 중년의 사내는 분명히 저였습니다.

3,40년 전 초등학생 중학생이었던 소년은 늘상 이곳에서 머리를 깎았습니다.
3부, 5부. 까까머리를 하다 두발자유화가 생기며 제법 멋도 부리게 된 시절이 떠올랐지요.
그랬던 소년이 이제는 흰머리가 늘어 염색을 하기 위해 여전히 변두리인 고향 동네의 이발소의 거울 안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새로 이사오셨나 보지요?” 이발사가 물었습니다.
“네. 근데 이곳이 저의 고향입니다. 한 3,40년 되었네요.” 이발사가 답합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고향으로 돌아 오셨군요.”

살다보면 고향이라는 곳이 떠나온 곳이기도 하지만
또 살다보면 고향이라는 곳은 결국 돌아갈 곳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힘들 때 자기가 떠나온 고향을 되새기지요.
그리고 마지막 떠나갈 때에도 돌아갈 본향을 그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거울 앞에 서면 내가 고향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었던지를 목도하게 됩니다.
고향을 떠나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았던 것인지,
아니면 고향을 떠나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을 살았던 것인지.
거울 속에 앉아 있는 그 소년은 사내에게 질문입니다.

소년이었던 예수도 그랬을까?
자기가 살아야 했던 삶을 그는 어떻게 인식했을까?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자기가 살고 싶은 삶으로 바꾸어냈던 것일까?
장성하여 고향사람들에게 돌아가 출사표를 던지기까지
소년이 그리던 사내. 그리고 사내가 돌아보던 소년.

아마 예수도 그러하였으리라.
인생이 흘러가는 일정한 방향, 그것을 좀 더 영민하게 알아차리고
결국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를 더 깊이 숙고하다보면
이렇게. 끝내는 이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예수도 아마 그러하였으리라.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비단 예수 그분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의 숙명이자 지표가 되기까지.
주님의 영이. 주님의 바람과 전망이 오늘 우리들을 통하여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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