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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7-09-11 08:52:24, Hit : 286)
<계명>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계명>

스스로 무신론자라 자인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종교에 대한 소외를 넘어 신앙 자체에 대한 회의가 세련된 지성처럼 둔갑한 세상 속에,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끊임없는 자각을 요구합니다.
“왜 우리는 신앙인인가?” 라는 질문이지요.

사람이 사는데 있어 익히고 깨우쳐야 할 것은 비단 학교만은 아니고,
사람 되는데 있어 등 따숩고 배부른 것 말고 더 중한 것이 있어야 하고,
사람의 도리에 있어 상식 그 이상의 깊이와 의미가 확연해야만,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

왜 믿지 않는 것보다 믿는 것이 더 낫고,
많은 한계와 제약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깊이는
믿음에서 발견되는지에 대하여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이런 측면에서는 대단히 경직되어 보입니다.
신앙을 지킨다는 것은 결국 이렇게 숱한 계誡와 율律.
지켜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613가지의 율을 앞세운, 삶에 대한 끊임없는 간섭으로 인식합니다.

무지하고 몽매하고 어리석기에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계명을 존중하는 사람들입니다.

계명誡命입니다. 지킬 誡, 경계할 誡, 스스로 조심할 誡.
스스로 지키고 삼간다는 의미의 誡는 그 자체로는 대단히 엄격한 단어입니다.
그것에만 종속된다면 신앙은 굴레에 불과하지요.

하지만 그 의미와 목적은 命에 있습니다.
목숨 命, 명할 命, 운명 命.
왜 계와 율을 지키는가? 命에 있고 그것이 命이기 때문입니다.
誡를 통하여 命을 이루는 사람이 바로 신앙인입니다.

誡가 없으면 命도 없습니다. 이것을 압니다.
지키는 것이 있으면 이룰 것이 있고
가리는 것이 있으면 가질 것이 있으며
삼갈 것이 있으면 구할 것이 있습니다.

誡命 속에 運命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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