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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7-09-19 08:43:53, Hit : 370)
<살아도 사는 것처럼> 연중 제24주간 화요일

<연중 제24주간 화요일>

<살아도 사는 것처럼>

사람에게 저마다 죽어야 할 때...라는 것이 딱히 산정된 것은 아닐테지만,
그래도 어리고 젊은 날의 죽음은 결코 예사로울 수 없는 노릇입니다.
얼마나 인간의 생명이라는 것이 위태롭고 보잘 것 없는 것임을 목도하게 만드는
현장 앞에서면 더욱 그렇습니다.

제가 아직도 잊지 못하는 죽음 가운데 하나입니다. 혜진이라는 열여섯 소녀였지요.
초등학교 때 부모가 이혼을 하고 그 이후 방황하던 소녀는 급기야 가출을 하게 됩니다.
열여섯 소녀가 맨몸으로 만나는 세상이 호락할 리가 없지요.

오만 일을 다 겪고 결국 가출 소녀의 쉼터에서 어쩌면 처음으로 자기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수녀님과 봉사자들을 만나게 된 겁니다. 불만과 적개심으로 가득 찼던 아이가 육개월을 살더니 어느 날, 죽어도 안가겠다던 집으로 돌아가서 이제는 자기도 공부하고 집에 있는 동생도 돌보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다시 부산으로 왔지요.

집은 그 꼴 그대로였지만, 아이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집 근처에 있는 대안학교로 자기가 찾아가서 입학을 하고, 버려진 동생을 돌보며 아이는 그렇게 딱 보름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동생네 학교의 바자회에 먹거리 사러간다고 아버지에게 5천원을 받아들고 집을 나섰다가 반여동 비탈길에서 운전 미숙자의 부주의로 인한 교통사고 때문에 목숨을 잃었고, 그 장례미사를 제가 집전하게 되었습니다.

혜진이 아버지의 눈물 어린 고백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다시 돌아온 혜진이는 예전의 그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내 자식이지만 전혀 다른 아이었습니다. 아마 그 모습을 보여주려고 아주 잠깐 돌아왔다 다시 떠난 것 같습니다.”

죽었던 아이가 살아 돌아오고, 살아 돌아온 아이가 다시 죽어 떠나갑니다. 평생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할 숱한 이야기 가운데 유독스러운 것은 ‘진짜 사는 게 뭐고, 진짜 죽는 게 뭘까?’를 열여섯짜리 소녀에게서 만났기 때문입니다.

살아도 사는 것처럼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은 죽어도 죽는 것처럼 죽지를 못합니다.

단 하루를 살아도 뜨거운 목청 가득 살아있음을 확인하며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랑하는 사람과 내가 사랑해야 하는 사람 속에 충분히 사랑했음을 고백하며
오늘 죽어도 좋은 삶을 사는 사람이 정말 몇이나 될까?

그러면서 우리들은 끌려갑니다. 맨날 “죽겠다. 죽겠다!” 곡소리를 끊어낼 줄 모르는 것은 따지고보면 남의 상여가 아니라 결국은 내 죽을 그 길. 내가 만날 나의 장례식장에 하루하루 끌려가며 사는 겁니다.

비극은 젊은 날이거나 늙은 날이거나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살아도 사는 것처럼 살지를 못하고 죽어도 죽는 것처럼 죽지를 못한 채 억울해하거나 불안해하는 그 어리석음 속에 있습니다.

“죽은 이가 일어나 앉아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루카 7,15) 무엇을 돌려받은 것일까? 내가 정말 사랑해야 하고, 내가 정말 표현하고, 감사해하고, 다시 귀하게 돌려주어야 할 그 대상에 대한 깨달음과 찰라의 순간들! 정말 별 것 아닌 듯 살아버리는 그 시간들을 다시 돌려받은 것이겠지요.

이 미사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자의 행렬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미사는 언제나 그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자>의 행렬. 그 속에 우리가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살아도 사는 것처럼. 죽어도 죽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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