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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7-10-04 13:18:00, Hit : 376)
<한가위> 한가위 합동 위령 미사 당리성당

<2017. 한가위 미사>

<한가위>

명절을 맞아 부모와 고향을 찾아오신 이들과, 지척 동네에서 섭생을 나누며 살아왔던 이웃들 모두에게 한가위. 그동안의 신세짐에 크게 갚음하시는, 큰 가배의 한가위가 되시기 바랍니다. 저는 메리놀병원에서 5년째 행정부원장을 맡고 있는 조영만신부입니다.

제가 독일을 떠난 지가 제법 되는데도 아직도 독일에 있는 신자에게서 연락이 옵니다. 대부분은 이런 겁니다. “신부님. 한국 별 일 없습니까?” 자기들 동네에서는 곧 전쟁날 것처럼 떠드는데 정작 한국 사는 사람들은 마치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태평스러운 것이 아마 외국에 사는 사람들 눈에는 대단히 특별한 듯 보이는 모양입니다.

별 일 없습니다. 얼마나 별 일이 없었으면 무려 10일 동안이나 연휴를 해서 병원 운영해야 하는 나는 아주 죽을 지경이고, 이 때가 찬스다 하여 차례고 뭐고 아예 해외여행 떠나버린 사람들만 100만 명이 넘고, 가만있긴 뭐해서 하다못해 제주도라도 한 번 가보려해도 비행기 티켓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 지레 포기하고 그냥 조용히 방구석이나 지키고 있으니 무슨 별 일이 있겠습니까? 별 일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별 일 없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를 우리는 아직도 모릅니다. 세상은 이렇게 죽겠다 아우성이고, 테러에 뭐에 죽이겠다 저 야단법석을 피우는데도 불구하고, 정말입니다. 이 좁은 한국 땅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과 공포의 강도를 그대로 다 감당하며 산다면, 제대로 숨 쉬고 살 사람 몇이나 되겠습니까?

큰 거 없어도, 그저 하루 벌어 하루 밥 한 술 넘길 수 있는 것마저도 한국에서 산다는 일에는 충분한 감사 이상의 것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먼 우주에서 바라보면 이 한국 땅은 참 재미있는 곳일 겁니다. 이 조그만한 땅덩어리 중간에 선 하나 그어놓고 한 발자욱이라도 건너가면 죽여! 내일이라도 당장 서로를 잡아 먹을 듯 노려보는 세월만 무려 70년.

서로 건너가지도 않고 연락하지도 않은채, 목구멍까지 칼날을 들이밀고 앉아 밤낮으로 으르렁거리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진짜 사는 일을 웃기게 살고 앉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 일이 없는 듯, 그리고 별 일이 아닌 듯, 더 큰 무기만 싸지르고 앉아 있는 이 한 복판에 축복은 이렇게 우리가 다시 명절을 만난다는 사실입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만난 겁니다. 원하지 않았는데도 만난 것이고 만나야 할 것이 정해져 있으니 만날 수 밖에는 없는 겁니다. 그리고는 이게 사는 것임을 깨닫지요. 내가 원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정해져 있는 시간이 나를 지배하고 있고 나를 이끌고 있으며 결국 내가 원하지 않는 시간에 나를 종료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가능한 살아 있을 적에 만났으면 합니다.

우리는 <공간>에 평생 번 것을 다 쏟아붓고 있지만 정작 주인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사실을! 죽을 때가 다 되어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살아 있을 때, 조금이라 더  힘 있고 능력있고 건강있을 때 만나기를 바랍니다. 내가 산 시간이 나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명절이 우리에게 주는 축복이기를 바랍니다.

평생을 먹고 사는 일에 바쁘다하지만, 평생을 그렇게 먹고만 살면 그게 금수랑 뭐가 다르겠습니까? 인간의 시간은 그렇게 물량적으로만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시간을 한 번 봅시다.

중앙성당 신자 자매가 찾아왔습니다. 아저씨가 간암 말기인데 메리놀병원호스피스 병동에 자리를 알아봐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방사선에 항암에 환자는 지칠데로 지쳐있었고, 깊이 진행된 암 덩어리가 쉬이 사라질 수가 있겠습니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알 수는 없지만 차라리 우리 이 시간을 더 귀하게 만들도록 합시다. 물론 조금이라도 더 건강해질 수 있다면 의료진과 환자는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그다지 크지 않은 가능성 때문에 지금 남아 있는 이 시간들을 고통으로만 채우지는 맙시다.

치료를 중단했습니다. 통증만 조절하기로 했습니다. 의식이 돌아왔지요. 그리고 부부는 다시 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여쭈었습니다. 아저씨는 저에게 을숙도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했습니다.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국제시장에서 적지 않은 사업을 했던 사람이고 남에게 좋은 일 많이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섰을 때 그는 그저 낙동강 하구언 을숙도에서의 바람을 한 번 맞아보고 싶다 했습니다.

함께 있던 아내에게도 똑같이 질문했습니다. 자매는 그랬습니다. 아저씨랑 이번 추석을 함께 보내고 싶다하더군요. 역시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평생을 큰 일하며 산다고 우리는 착각합니다. 아닙니다. 큰 일하지 않습니다. 그냥 함께 힘들어도 서로를 견디고 때로는 지탱하고 사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는 제일 큰일입니다. 좋은 거 안 먹어도 되고 좋은 거 안 입어도 됩니다. 다만 함께 정해진 시간을 끝까지 만나면 됩니다.

명절을 앞둔 연휴가 길어서 메리놀병원호스피스 병동에서 지난 금요일에 송편 빚기를 하였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병색이 완연한 남편을 옆에 누이고 아내가 송편을 빚습니다. 아마 평생을 해온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송편을 빚는 아내는 자꾸만 눈물을 흘립니다. 40년을 함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빚었던 이 송편이 올해는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더 그랬을 겁니다.

그리고 송편을 빚고 난 다음 날 토요일 형제는 선종하였습니다. 정해진 것을 피할 수 없고 피해서도 안됩니다. 다만 정해진 그 시간이 오기 전에 우리는 만나야 합니다. 지금 무심히 지나가는 이 시간들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만나야 하고, 이 작고 볼품 없던 인생이, 누구하나의 도움 없이는 도무지 먹고 살지를 못했던 이 몰골이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살아 받은만큼의 반절이라도 되돌려드렸는지, 만나야 합니다.

내가 뿌린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셨고, 내가 심은 것보다 더 한 것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이것을 몰랐을 뿐입니다. 그러니 가지고 있으면서도 부족하고 쓰면서도 모자랐으며 먹으면서도 배고팠습니다. 그런데 막상 더 먹을 수도 없고 가질 수도 없으며 쓸 수도 없게 되었을 때 깨닫게 되지요. 인생이라는 건 내가 가진 것으로 승부를 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쓴 것. 어떻게 쓰고, 어떻게 주고, 어떻게 베풀었는가! 그것에 따라 결판이 난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그런 명절입니다. 소유에 모든 것이 달렸다고 생각했던 조상들조차, 소유가 아니라 나눔에 사람 사는 인생이 달렸다고 보셨기에, 갚음하라고 가위, 크게 갚음하며 살으라고 한가위를 만들어놓으셨습니다. 무쪼록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시고 한 사람에게라도 더 갚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비단 복음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이 계절의 자연이, 왜 뿌린 것보다 수백 배의 소출을 돌려주는지 알아차릴 수만 있다면, 어쩌면 이 가을은 모두에게 넉넉해지기 참 좋은 계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 이 동네에 와서 염색을 했습니다. 40년전 그 이발소는 없어졌지만, 이발소 의자 팔걸이에 깔판을 깔아 앉아있는 그 때 거울 속 꼬맹이는 3부 머리 5부 머리의 까까머리를 했지요. 잘 안 드는 바리깡이 올라갈 적마다 따끔거려 정수리 쭈삣쭈삣 인상 쓰기가 바빴습니다. 하지만 40년이 지나 거울 속 그 소년은 어느덧 염색을 하느라 수건을 덮어쓴 중년의 아저씨가 되어 있더만요. 그것을 만나고 혼자 피식 웃었습니다.

그런 고향입니다. 나의 시간을 다시 만나게 해주는. 여러분 모두에게 그런 고향이라는 공간이 주는 축복의 시간이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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