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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소리 님께서 남기신 글 (2004-04-10 00:07:49, Hit : 959)
성탄준비... 대림 4주일 강론

<대림 제4주일 강론>

맑고 경건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듣고 싶은 성탄 전 마지막 주일입니다. 구세군 남비도 이름 없는 천사들의 손길로 채워져가고, 새시대를 열어보겠노라고 나선 고등학교 출신의 대통령도 당선되는 세상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참, 알 수 없는 일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제는 도무지 못 살 것만 같은데, 그래도 자고 나면 그럭저럭 또 하루를 살만큼의 힘이 생기고, 온갖 죄악과 불의가 횡횡하는 세상 속이라 그만 포기하고 싶다가도, 이 속에서도 희망을 잉태시키는 사람들, 아무 이름도 남기지 않고 천 만원을 선뜻 자선 남비에 넣는 사람, 자기 퇴직금 털어 오갈 데 없는 노인 20분을 모시는 사람, 일년 내내 지은 배추농사 거두어 손수 김장하고 또 이를 불우한 이웃들에게 나누어주는 사람들의 소식을 접하다보면, 그래도 세상은 아직 따뜻한 곳이라고, 아름다울 수 있는 여지의 공간이라고... 다시 힘을 내게 됩니다.

내것만 움켜쥔 세상은 삭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돌아누운 사람의 등에서 절벽같은 막막함을 체험하는 것처럼, 베풀줄 모르는 사람들만 모여있었다면 아마 이 세상은 금새 지옥으로 바뀌었을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누고, 베풀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역시 이 세상은 움켜쥔 손 보다, 활짝 펼쳐낸 손이 만들어갑니다. 그리고 활짝 펼쳐낸 손이야말로 하느님의 손을 닮았습니다. 하느님은 그 손들을 통해 당신의 역사를 일끌어가십니다. 오늘 다윗이 그렇고, 오늘 마리아가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했던 왕, 다윗이 하느님의 집을 짓겠노라고 나섰으나, 하느님은 거절하십니다. 인류 역사에 다윗만큼 많은 금을 가졌었던 왕은 없었으나 하느님은 그 왕의 제안을 거절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지만 그것은 내 집을 짓는 일은 너의 몫이 아니다. 너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의 주도에 의해 이 세상에 나의 집은 완성될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 대성전의 역사는 다윗의 사후에 시작됩니다.

마리아... 우리는 자칫 이 이름을 지나치게 거룩하거나, 지나치게 겸양하기만한 인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마리아는 자신을 낮추어 주님의 뜻에 온전히 순명하지만, 그래서 마리아의 겸손이 더욱 빛이 나지만 그것에 앞서, 하느님, 인간의 창조주라는 그 분께서 피조물에 불과한 존재 인간에게 당신의 계획을 설명하시고 이것에 대한 동의를 구하시는 모습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이는 인간이 하느님에게 드릴 수 있는 겸손 너머의 겸손입니다.

구원의 주도자는 하느님이시면서도 이 주도자 하느님은 구원의 파트너인 인간의 자유를 소외시키지 않으십니다. 그냥 당신께서 알아서 해결해 버릴 수 있는 일들도 꼭 인간의 선택과 인간의 응답을 통해서만 이루어내십니다. 인간이 자신의 것들을 버리고 그 자리에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것으로 채워 넣기를 희망하십니다.
다만, 희망하실 따름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이 자유의지는 하느님이 우리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에 대한 좋은 증거물입니다. 만일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오직 당신만을 선택하도록 정해놓으셨다면, 그래서 인간이 선만을 행하도록 하셨다면, 우리는 인간이 아닌 로봇들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택이라는, 자유의지라는 엄청난 선물을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통해 나를 창조하신 하느님을 배반할 수도 있고, 그 자유의지를 통해 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자유의지를 통해 선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악을 선택할 수도 있고, 이 자유의지를 통해 베풀 수도 있지만, 움켜쥘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겨두셨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우리를 그 깊이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정도의 사랑을 하기가 힘이 듭니다. 사랑하면 무조건 내 뜻대로 되어야 합니다. 남편도, 자식도, 부모도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의 방식은, 중심은 내 뜻입니다.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하고 결혼을 약속한 사람들, 그의 배우자가 비록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조차도 사랑에 포함시키는 사랑입니다. 그 사람은 나를 배신하고, 그 사람은 내게 눈물 흘리게 만들지만,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그 사람을 기다립니다.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겠노라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이를 닮았습니다.

실수의 가능성, 잘못의 가능성, 급기야 배신의 가능성 까지도 모두 담아두신 사랑입니다. 그 사람의 어떤 선택마저도 사랑하시려는 그 사랑입니다.

마리아가 정말로 가브리엘과 이런 식의 대화를 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런 방식으로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실 정도로 자신을 낮추셨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인간이 창조주인 나를 배신하고 결국 나를 죽일 수도 있음까지도 포함시킨 낮춤임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기념합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신앙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시작이 바로 성탄이라는 사건, 하느님이 인간이 되어오신 육화의 현장입니다. 그런 성탄, 내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을 먼저 내 것으로 삼는 그런 성탄이 우리 모두에게 시작되기를 희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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