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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소리 님께서 남기신 글 (2004-04-10 00:09:50, Hit : 873)
몸은 먼지투성이요... 주님 공현대축일

<주님 공현 대축일 강론>

<몸은 먼지투성이요, 마음은 한 줄기 바람이더라...>

몸은 먼지투성이요, 마음은 한 줄기 바람이라던, 어느 선승의 글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아름답게 가꾸려 밥도 굶고 수술도 하고 운동도 하지만 실상은 온갖 더러움 가득한 먼지 투성이가 바로 이 몸뚱아리요, 초발심이니, 평정심이니, 갖은 기도수행으로 마음공부를 한다고 하지만, 이리 불면 이리로 휘청, 저리 불면 저리로 휘청거리는 바람과 같은 마음이라고 70년 수도정진 끝에 이를 고백하는 선승의 글을 읽으며, 도대체 산다는 일은 다시 한 번, 무엇인지를 되묻게 됩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공적으로 드러나심, 굳이 의미를 첨가하자면, 동방의 박사로 표현된 이방민족에게 예수님께서 경배를 받으심으로서, 비록, 이스라엘에서 나셨지만 이스라엘의 왕만이 아니요, 비록, 유대민족에게 나셨지만 유대민족의 구세주만이 아닌, 온 인류의 왕이요, 온 인류의 메시아로 예수님께서 드러나셨음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어찌보면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같은 모습입니다. 왕의 모습을 한 이방의 무리가 오직 별만 보고 그 길을 따라옵니다. 자신들의 안위를 버리고 별의 족적을 따라 모든 것 중단한채 그 길을 걷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권력가는 그들의 소리에 술렁이기 시작하고 간교한 유혹을 제안하지만 그들은 기어이 자신들이 보고자 했던 희망의 성취를 확인하고 유유히 사라집니다.

마치 연극 배우들처럼, 갑작스레 등장했다 조심스레 사라집니다. 우리는 그들이 무엇 하는 사람들인지, 몇 명인지, 베들레헴을 다녀서 어디로 갔는지, 후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되었는지, 전혀 말해 주지 않습니다. 단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라는 예물이 셋이기에 후대에 발타살, 멜키올, 가스발이라는 이름 셋을 붙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들이 점성술사였는지, 박사였는지, 왕이었는지는 그다지 깊은 의미가 있어 보이진 않습니다. 다만 복음사가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하느님의 아들을 부정했던 이스라엘은 예수님을 맞아들이기는커녕 그를 죽이려고만 하였고, 오히려 이방의 민족들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받아들였기에, 이방 민족이 주체가 되는 그리스도 교회가 참된 하느님의 백성임을 드러내고자 하는데 이 복음의 목적이 담겨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이든지, 무엇을 지녔던지를 뛰어넘어, 그들의 발끝이 어디로 향했는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 역시 숱한 어려움과 두려움으로 점철된 여행을 시작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때로는 이 길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회의도 들었을 것이며 어느날은 별이 보이지 않고, 마음이 어둡기만 한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별이 가면 함께 가고, 별이 서면 함께 섰을 것입니다.  

그저 그 걸음이 우리를 닮았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하면서도 세상의 온갖 유혹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는 나의 일상을 닮았고, 믿는다 하면서도 숱한 어려움과 고통에 회의도 들고 마음이 어둡기만 했던 그 모습도 닮았고, 미혹하기만한 이 세상살이도 똑같이 닮았습니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세상살이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나의 희망으로, 나의 빛으로 삼고 오늘도 이 황망하기 이를데 없는 세상을 전진, 전진하려는 신앙인의 걸음이 이  동방의 사람들을 닮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런 존재입니다. 나고 싶어 나지도 못했고 가고 싶어 가지도 못하는 존재들입니다. 그저 당신께서 가라하니 목숨을 시작했을 따름이요, 당신께서 이제는 오라하니 돌아갈 따름입니다. 그런 존재들입니다. 내 것인 줄 알았으나, 주름진 손은 이미 텅비고 말았고, 원하지도 않았던 고통과 아픔으로 하나 둘, 나의 희망이 줄어갈 때쯤엔, 아마 우리에게도 단 하나의 별만이 뚜렷이 보일 것입니다.

갖가지 휘황찬란해 보이는,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온갖 분잡스러움으로 엉클어놓던 그 혼란이 끝나면, 오직 한 개의 별, 오직 한 개의 빛만이 우리를 이끌어 줄 것입니다.
똑같은 별이 떴으나, 누구는 보고, 또 누구는 보지 못했습니다.
똑같은 빛을 만났으나, 누구는 깨닫고, 또 누구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똑같은 비를 맞고도 누구는 그것이 은총임을 알지만, 또 누구는 빨리 그치기만을 바랍니다.

자, 나는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쫓는 사람들로 남으려 하십니까?
고통을 고통으로만 끝내지 마시고, 아픔을 아픔으로만 끝내지 마시고, 눈물을 눈물로만 끝내지 마시고, 그 너머에 있는 희망의 언저리까지 그 빛을 따라 걸으십시오.

몸은 먼지투성이요, 마음은 한 줄기 바람과도 같은 이 세상살이에 빛, 한 줄기 그 빛이 영롱합니다. 그 빛을 깨달읍시다. 그 빛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섬깁시다. 욕심과 원망, 이기심과 불평이라는 구름에 가려 어두워진 그 빛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그 빛 아래, 소중한 이 인생길을 예물로 들고 만날 수 있기만을 희망합니다. 동방박사들의 뒷 편에 여러분도, 그리고 저도 함께 경배드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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