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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소리 님께서 남기신 글 (2004-04-09 23:59:20, Hit : 1271)
인권주일... 나해 대림2주 강론



<대림 제2주일 강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왜 하필 그 사람을 사랑하냐고 물으면, 사랑하는데 이유가 있나? 그 사람이니까 사랑하지... 라고 대답을 합니다. 저 또한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뻐서 사랑하고, 돈 많아서 사랑하고 능력이 있어서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그 이유의 소멸과 동시에 식어버릴 우려가 다분합니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이, 부모가 쌍수를 들고 뜯어 말리려해도,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그 사람 아니면 안 된다고 나서는 딸을 막아낼 재주란, 기껏 해봐야 부모 자식간에 연을 끊자는 엄포가 고작입니다. 그래봐야 그 딸이 자식 낳아 돌아오면 어짜겠노 하고 다시 품어주시는 것이 부모입니다.

단지, 그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합니다. 참 귀한 가르침입니다.

오늘 인권주일에 뚱딴지같은 사랑타령을 늘어놓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랑에 아무런 조건이 붙지 않는 것처럼, 인권의 문제 역시도 그 어떤 조건이 제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인식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존엄하다고 합니다.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그가, 능력이 있고, 존중받을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존엄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의 존엄성은 인정받아 마땅하다는 소립니다. 그러나 애석히도, 인간의 존엄성은 그의 존재 때문이 아니라 상태에 따라 결정되곤 합니다.

존중받을 만한 사람들이기에 존엄한 것이 아니라, 존중받을 가치를 별로 느끼지 못한다하더라도, 그가 단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그들의 존엄성과 생활을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장애인들이 그렇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렇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몸조차 가누지 못하시는 노인네들이 그렇습니다. 심지어, 어린 아이들이 그렇습니다.

인권의 시대입니다. 친권만 앞세워 아이들을 내 마음대로 패서 키우는 세상이 아닙니다. 인권이라는게 거창해서 마치 시위 현장에서만 등장하는 단어가 결코 아닙니다. 우리 가정 안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 인권입니다. 우리 집은 얼마나 인권이 잘 보호를 받는 집인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술만 드시면 아내와 자식들 때리고 집안 살림 다 때려부수시는 아버지, 중단하십시오.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그것이 반인권의 상황입니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아이들을 서너개의 학원에 보내시느라 애쓰시는 어머니, 중단하십시오.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뛰어 놀 수 있는 시간을 허락 받아야 합니다. 공부로 지친 어깨들, 그것이 바로 어린이에 대한 인권침해입니다.  
부모님의 인권을 짓밟는 자식들, 중단하십시오. 나의 권리 요구에는 끝이 없습니다. 대학공부 다시켜주고 시집 장가 갈 때 집도 장만해 주어야합니다. 그걸로 끝나지 않습니다. 김장철되면 김치 퍼다 주어야 하고 맞벌이하면, 내 아이도 당연히 부모님이 맡아 주셔야 합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부모님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입니다.  

인권은 뻔한 이야기입니다. 인간다울 수 있는 권리를 서로서로 보호해주자는 이야기입니다. 어린이가 어린이다울 수 있는 권리, 학생이 학생다울 수 있는 권리, 어른이 어른다울 수 있는 권리가 바로 인권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것이 뒤바껴 버렸습니다. 어린 아들이 아이 같지 않고 어른스러움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그거 자랑이 아닙니다. 아이때 아이의 반응을 익히지 못하고 어른의 반응양식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4-50대가 되면 그 행동양식이 도리어 아이의 모습을 띠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외곬수에 아내나 가족의 아픔 보다 그저 내 힘든 것에만 매여있는 가장들의 모습이 바로 거기에서 나옵니다.)

학생들은 학생답지 못한 것을 자랑꺼리로 여깁니다. 이렇게 크면, 어른이 되면 어른다운 모습보단 어른답지 못한 모습을 자랑으로 여기게 됩니다. 어른답지 못한 것, 무엇입니까? 숨어서 나쁜 짓 하는 어른들, 야합이나 하고, 밀실정치나 하고, 뇌물이나 먹이고, 원조교제니 뭐니 하는 것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됩니다.

이 모두 <답지 못한> 세상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나다운게 무엇입니까? 인간다운게 무엇입니까? 신앙인다운게 무엇입니까? "답게" 살기란 참으로 어렵지만, 그래도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바로 우리 인간을 인간답게 하시고자 몸소 인간이 되어오신 하느님임을 우리는 믿고  있지 않습니까? 하느님마저 인간답게 되시고자 오셨는데, 인간이 인간답게 되기를 주저한다면 우리는 가짜 신앙인들입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서슬퍼런 목소리로 외칩니다. 회개하십시오. 돌아오십시오. 이 외침의 뜻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모습으로, 자녀의 모습으로 돌아오십시오. 인간다움을, 자녀다움을 회복하십시오. 라는 소리 아닙니까?

내가 인간답게, 나답게 살기 위해서 반드시 전제해야만 하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의 권리가 소중하다면, 나의 권리가 귀한 줄을 알려면 반드시 너의 권리를 먼저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의 권리가 침해를 받는 모습을 내가 묵살한다면 곧 권력은 나의 권리마저도 침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나만 더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바로 내 것만 귀한 줄 아는, 권리의 이기주의에 대한 경고입니다. 남 일이라고, 내가 겪은 억울함이 아니라고 모른척합니다. 침묵하는 건 예사고 때로는 그들의 억울함에 시끄럽다고, 내 먹고 살기도 바쁘다고, 불평을 늘어놓는 일조차 있었습니다.

문정현 신부님이 지난 6개월간 그토록 소파개정을 위해 매일같이 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했었는데, 가장 힘들었던 것은 미국의 오만함이 아니라, 같은 조국 사람들, 여중생이 깔려죽고,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한다는 소리에도 저 신부 뭔 짓을 하는거냐며 거들떠도 안보던 한국 사람들의 무관심과 침묵이 가장 무서웠노라고 대답하시던 기사를 읽었습니다.

타인의 아픔에 대해 내가 통증을 느끼지 못하면, 그것은 나의 인권 역시도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정답입니다. 다행히 사건이 터지고 6개월이 다 되어서야, 겨우 이 나라 정부도 항의하는 한국사람 때리지 않습니다. 얼마나 고마운지... 신부님들이 삭발을 하고 광화문에서 단식 기도에 들어가시고,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부당함에 대하여, 억울함에 대하여, 인권에 대하여 동참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다행한지 모르겠습니다.

인간다울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다움을 요구할 줄 알아야하고, 그 다음 인간다움을 실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왠지 사람인자 다섯을 써보고 싶습니다.
인간이 인간이면 인간이냐 인간다워야 인간이지!
인권주일에 참으로 부끄럽지만 효순이와 미선이의 이름을 다시 한 번 기억합니다.

#2. 효순양 아버지 신현수씨가 쓴 <딸에게 보내는 편지 1·2> 전문

사랑하는 딸 효순이에게
효순아 어느덧 니가 떠나간 지 오개월이 넘어서 눈이 내리는 겨울이 시작됐구나. 너에게 보내는 이 편지는 무슨 우표를 붙여야 너에게 갈 수 있는지. 주소도 쓸 수 없는 이 편지를 쓰다보니 무능한 부모로서 할 말이 없다.

비록 너는 떠났지만 우리 식구들 너를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답하구나. 아빠도 언젠가 이곳을 떠나 너에게 가겠지. 그게 언제일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니가 떠난 후 너희를 위해 많은 국민들이 강국이란 미국을 향해 많은 싸움을 시작했다.
결국 미국 대통령의 사과까지는 받았지만 소파개정까지는 이루지 못했구나. 너와 미선이는 갔지만 이 땅에 앞으로 너희같이 희생당하는 일 없게 하기 위해 전국에 있는 언론이나 국민들이 분노해 너희들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한다 하는구나.

효순아, 이 아빠의 글을 볼 수가 있느냐. 어떻게 해야만 한을 달랠 수 있겠느냐. 꿈 많은 소녀, 효순아, 미선아. 세상을 향해 날개짓 한번 해보지 못하고 너희들은 어디로 갔단 말이냐. 날개짓을 하기 위해 하늘로 갔느냐. 꿈을 키우기 위해 하늘로 갔느냐. 이승에서 못 다한 모든 것을 접고 저승에서나마 이루길 바란다.
훗날 너희들 아빠·엄마도 저 세상으로 갔을 때 너희들은 어떻게 돼 있을까. 많이 커 있을까 그대로 있을까. 이 아빠가 항상 말했지.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라고.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해서 후회 없는 삶을 살라고. 그러나 이제는 모든 식구를 뒤로 한 채 너만 홀로 떠나 갔구나.
미선이와 너는 떠나가면서 많은 숙제를 남겨두고 떠나갔구나. 이 숙제는 언제까지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아빠도 최선을 다하여 숙제를 마치고 훗날 너희들 곁에 갈 것이다.
뭐라 이 글을 마무리하랴. 사랑하는 내 딸 효순아…
- 11월 28일. 신효순 양에게 보내는 아버지 신현수 씨의 편지였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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