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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8-06-24 21:33:21, Hit : 279)
<간호사의 구원> 전국가톨릭간호사회 피정 강론

<전국 가톨릭 간호사회 피정 미사>

(INTRO)
금방이지요? 어제 만나고 오늘 헤어집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돌아가야 할 자리가 바쁜 사람들이지요.
하지만 저는 기대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어제의 사람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제를 살아낸 오늘의 사람으로.
내가 얼마나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인지를 깨달은 사람으로.
그 사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해운대에서의 피정은 한 때의 난장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에게. 그리고 오직 여러분을 위하여 이 자리에 있는 사제들과 봉사자들에게
유일한 선물은, 이것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살아갑시다.
그것 때문에 기도하고, 그것 때문에 미사하고, 그것 때문에 간호사를 합시다.
잠시 침묵으로 파견 미사를 준비합시다.

(강론)

<간호사의 구원>

간호사는 간호사의 일을 통해 간호사가 되어갑니다.
사제는 사제의 일을 통해 사제가 되어가지요.
저는 이미 사제이지만, 저는 아직도 사제가 아닙니다.

간호사라는 존재가 걸어야 하는 길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여러분은 간호사이지만 아직 여러분은 간호사가 아닙니다.
무엇이 모자라고 부족해서는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 그것이 아직 우리 모두에게 종료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간호사가 간호사이게 하는 힘. 그것에 집중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이미 충분합니다. 우리의 행위는 이미 고귀합니다.
우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살았고, 또 지금도 우리 때문에 누군가 숨을 쉬고 있습니다.
귀한 일이고 대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왜 다시 질문하는 것일까요?

간호사로서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입니다!
사제가 사제로서 구원을 받듯, 간호사는 간호사로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 속에는 사람이 있고, 신앙이 있고, 믿음이 있습니다.
피정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곳입니다.

누가 더 능력이 있으며, 누가 더 성실했고, 누가 더 훌륭한 성과를 올렸느냐를
피정은 묻지 않습니다. 다만 피정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당신이 지니고 있는 사랑의 크기를 질문합니다.
사랑도, 능력입니다!
다 똑같은 간호사의 일을 하지만 다 똑같은 간호사는 아닙니다.
사랑의 능력. 그 크기가 큰 사람이 있고 그것이 작은 사람이 있습니다.
비록 그것이 죄가 되지는 않겠지만,
이 고생을 하고서도 정작 내가 구원받지 못한다면
안타까운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부디 사랑의 능력을 키워주십시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의료시장에서 간호사들은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기 때문이지요. 시장에는 그런 것이 없으니까요.
오직 이익과 이기만 존재할 뿐이니까요.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우리를 간호사. 그것도 가톨릭간호사이게 하는 유일한 힘을 확신하십시오.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랑만이 이 피정의 시작이자, 사랑만이 이 피정의 마침일 수 있습니다.
파견미사 답게 마지막으로, 병원이라는 직장에서의 사랑을 말씀드립니다.
잘난 동료들이 많이 사는 동네가 병원입니다.

그런 곳일 수록 사랑은 <불편함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에 달려있음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내 사랑의 능력을 키우려면 불편한 것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미움은 편합니다. 그러나 용서는 불편합니다.
분노는 편합니다. 그러나 인내는 불편합니다.
게으름은 편합니다. 그러나 성실함은 불편합니다.
교만은 편합니다. 그러나 겸손은 불편합니다.
지적하는 것은 편합니다. 그러나 기다려주는 것은 불편합니다.
회피하는 것은 편합니다. 그러나 책임지는 것은 불편합니다.
감추는 것은 편합니다. 그러나 고백하는 것은 불편합니다.
시키는 것은 편합니다. 그러나 내가 하는 것은 불편합니다.

너도나도 편한 것만 하고 살려하니 어떻습니까? 소리가 나지요. 니 일 내 일을 따지고 고생은 하면서도 좋은 소리는 못 듣습니다. 그러니 평생을 이 세월 먹고 남는 것이 남탓입니다. 오호통재라!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렇게 탓을 하고, 그렇게 내뜻대로 되네, 안되네, 아웅다웅 하는 사이, 우리는 늙거나 죽어가고 있습니다.

간호사 일,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기 때문에 하는 거고, 쉽지 않기 때문에. 어렵기 때문에 의미 있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왕지사 고생하는 거, 까지꺼. <불편함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이라도 자유롭게, 맘껏하고 죽을 일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세례자요한도. 그의 사촌 동생이던 예수도. 죽을 때까지 이것만 했습니다. 불편함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 그것 때문에 그들 모두는 목이 떨어져 나갔지만, 그것 때문에 그들 모두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지만, 다시 만난다면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은 구원의 사람으로 다시 만나야 안되겠습니까? 간호를 통해 구원되십시오. 아멘? 믿음을 통해 생명을 되찾으십시오! 아멘? 스쳐 지나가는 주님의 섭리로 한 때 피정을 지도했던 인연으로 남깁니다. 부디 남은 인생 하느님과 함께 걸어가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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