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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8-07-13 10:48:28, Hit : 338)
<와불>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와불>

화순 운주사에 가면 누워있는 불상, 와불이 있습니다.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 때의 모습을 본 뜬 것이라고 하는데, 다른 와불들처럼 옆으로 누워 팔로 머리를 받히는 양식이 아니라, 운주사 와불은 정면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완전히 드러누운, 말 그대로 ‘와불’입니다.

모로 눕던, 하늘을 보고 눕던 그렇게 누워있으니 얼마나 편안하겠습니까? 그러니 불상들의 대부분 표정은 아주 평화롭고 인자해보입니다. 삶에 지친 중생들이 사찰에 가서 그런 얼굴의 불상을 만나니 마음이 편안하고, 푸근해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성당은 어떻습니까? 일단 벽에 걸려있는 십자가가 짐승처럼 죽어가는 고통의 절정을 담고 있습니다. 벌거벗겨졌으며, 이마에는 가시가, 손과 발에는 대못이 그리고 가슴에는 창에 찔린, 피투성이의 처참하고 알아볼 수조차 없을만큼의 일그러진 얼굴.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성당 문을 열 때마다 만나야 하는 하느님의 얼굴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편치 않은 겁니다. 얼마나 평화로우면 드러누운 불상마저 있는 불교와는 달리 우리 그리스도교는 모든 고통을 짊어진 죄인의 모습을 주님이라 부르며 그 아래에서 기도를 바치고 있는 것이지요.

고통에 대한 접근법이 다릅니다. 부처님은 고통의 원인을 물었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제시하였습니다. 고통을 벗어던진 해탈에 이르러 열반에 드신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주님이라고 부르는 예수님은 다릅니다. 그분은 고통의 원인도 묻지 않으시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길도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그분은 고통 속으로 뛰어드셨습니다.

이것이 다르기 때문에 불상의 얼굴과 십자가의 얼굴이 다른 것입니다. 고통 속에 뛰어들어 고통을 함께 지겠다! 나서신 분. 예수를 우리는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고통은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원치 않으나 존재하는 것이고, 초대하지 않았으나 어느새 내 곁에 와 있는 것입니다. 도망칠 수도 없고 버려낼 수도 없습니다. 그 때 우리가 바라보는 십자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하셨습니다. 인간의 고통, 우리의 고통에 그분은 함께 있겠다고, 함께 고통 받고, 함께 눈물을 흘리며, 함께 일어서겠다던 약속. 그 속에 우리의 신앙이 있습니다.

병원은 여러분들의 병고에 함께 있겠다고 뛰어든 사람들입니다. 모르는 척 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쳐서 병고를 겪는 이들의 고통에 함께 하겠다는 곳이 병원입니다. 그러다보니 병원 사람들은 쉽게 상처를 받고 쉽게 다칩니다.

어느날 병동에서 눈물을 흘리는 간호사를 보았습니다. 자기가 돌보던 분이 돌아가셨는데 그게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지요. 냉정해야하고 엄격해야 하는데, 고통에 노출되는 것이 일상인 이들이 무던해지고 무감해지는 것에 대해서 이해를 하게 됩니다.

내 부모는 한 번 죽을 뿐이지만, 이 사람들은 매일을 하루같이 돌보던 이들을 떠나보내야 하니 왜 자기 부모처럼 돌보지 않느냐! 타박할 수 없습니다.

아픈 사람과 함께 아파하고 우는 이들과 같이 울어주기 위해 길을 나선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마땅히 응원받아야 하고, 마땅히 격려받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따르려는 이들에게 닥쳐올 고통에 대하여 예고하시는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끝까지 견디는 이” 도망치지 말고, 피해가지 말고. 그 속에 뛰어들어 끝까지 견디는 이. 병고도 그렇고 아픔도 그렇고, 세상의 모든 고통이 안겨주는 지표는 하나입니다. 끝까지 그것을 감당한 이들만이, 구원에 이를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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