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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8-07-16 08:31:28, Hit : 349)
<평화>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평화>

숲에는 새가 삽니다.
촘촘한 가지 사이를 쏜살처럼 날기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는 새가 있음을 압니다. 왤까요? 새소리가 들리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이유에 준하는 결과가 존재합니다.
인과관계이지요. 원인과 결과가 일치될 때 납득이 됩니다.
하지만 이 법칙이 통하지 않는 순간이 옵니다.

원인을 모르겠습니다.
굳이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으로는 도무지 설득되고 싶지가 않는 순간이 있지요.

부정하고 저항해보지만,
결과치에 충족되지 않는 이유의 나열만 반복할 수는 없습니다.
그 때. 도저히 이해되지 않거나 극복되지 않을 때 반응은 두가지입니다.
포기하거나 수용하거나.

일견 이 둘은 같아 보이지만 다릅니다.
절대적 상황을 처리하는 한 인생의 태도와 방식이 완전히 갈라집니다.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는 것이라면 단절과 원망만 남습니다.
반대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하는 것이라면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평화가 남습니다.

내 뜻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는데.
왜 이렇게 당해야 하는지 이유조차 충분치 않은데.
막상 그는 평화롭습니다. 평화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

그런 방식의 삶을 살아왔던,
삶에 대한 구체적 태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포기하는 방식이 아니라 수용하는 방식을.
예수를 따랐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랬습니다.

하늘나라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 때문에 닥쳐온 모든 상황을 수용했을 뿐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잃었지만 모든 것을 얻었고,
모두를 잃었으나 전부를 얻었습니다.
평화는 그런 것입니다.
내가 차지하는 전리품이 아니라,
나를 차지하는 더 큰 포용력입니다.

메리놀병원, 영상의학과 구용운 과장님이 암을 앓고 계십니다.
본인은 괜찮타, 하십니다. 괜찮아서 괜찮타...가 아님을 압니다.
이미 모든 것을 수용한 이에게는,
정말로 괜찮은 것 속에 아주 많은 것도 함께 포함되어 있음을.

의사의 병실 문을 닫으며 평화를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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