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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8-05-10 08:41:12, Hit : 312)
<조금>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부활 제6주간 목요일>

<조금>

자살 동행 SNS를 통해 30대의 두 남성이 전주에서 만났습니다.
서로가 세상을 살고 싶지 않은 이유를 나누었고...
다 버리고 죽자, 같이 저수지에 뛰어듭니다.

그런데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미수에 그치게 됩니다.
간신히 살아남은 그는 ‘조금 있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되는데 그 이유가
함께 죽기로 했던 사람이 타고 왔던 차량과 노트북 그리고 옷가지를 훔친
절도범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경찰 조사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수지에서 혼자 살아남게 되자, 물욕이 생겼다.’ 그래서 절도를 했다고 말이지요.

인간이 무엇인지 적나라한 단신입니다.
다 버리고 죽으려고 했는데 막상 뛰어들고 나니 발버둥을 치는 것이 인간입니다.
같이 죽자는 사람이 떠나갔는데
남겨진 물건을 보고, 견물생심 물욕을 부리는 것이 또한 비극적인 인간입니다.

방금 전까지 죽고 싶었던 사람이 돌아오고 나니 물욕이 생기더라.
결국 그게 인간이구나!
화장실 갈 때가 다르고 나올 때가 다른 것이 인간이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이 인간이고.
물에서 건져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그게 인간일 뿐입니다.

죽겠다! 죽겠다! 하지만 막상 죽을 때면 죽겠다 나서는 사람이 없고,
저 영감 좀 죽었으면 좋겠다는 할매 치고, 영감 죽고 나서 울지 않는 할매가 없습니다.
그냥 그 때 그런 겁니다.
그 때 속상한 거고. 그 때 죽고 싶은 거고. 그 때 좋았던 것 뿐입니다.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다 흐르고 지나갑니다.
생각보다 아주 빠르게, 많은 것들이 나를 관통하여 흘러가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조금 있으면’이라는 단서를 붙입니다.
“조금 있으면 보지 못할 것이고, 또 조금 있으면 보게 될 것.”(요한 16,17)이라 하십니다.
이 조금...이 의미하는 바.

<하느님의 시간>입니다. 영원이 드러나는 하느님의 시간.
인간의 시계를 넘어선 하느님의 시간을 이해할 수가 없는 제자들은 어리둥절합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가 없군.”(요한 16,18)

모든 것이 지나갑니다. 하느님의 <조금> 앞에 서면 그렇습니다.
인간이 영원인듯 다짐하는 것들치고 영원한 것이 없는 것처럼,
그저 하느님의 <조금> 앞에, 오늘만 조금 더 살 뿐입니다.

조금만 더 사랑하고, 조금만 더 아파하고, 조금만 더 희망하며.
내일 죽어도 좋은 사람으로 오늘을 살겠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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