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1 5/203 회원가입회원로그인
  View Articles
 님께서 남기신 글 (2018-05-15 06:30:17, Hit : 278)
<대문> 부활 제7주간 화요일

<부활 제7주간 화요일>

<대문>

누구나 다 아프지만,
누구나 다 상처를 겪고 고통을 당하지만,
누구나 다 똑같지는 않습니다.

누구는 아파도 성장을 하고,
누구는 상처를 받고 있으면서도 다른 이를 치유하며,
누구는 고통 중에 있으면서도 은총을 고백합니다.

삼시 세끼 먹고 사는 건 똑같아도
똥이 되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밥이 되는 인생도 있기에 그것이 고맙습니다.

병원에서도 그렇습니다. 긴 병에 성격 좋은 사람 만나기가 힘듭니다.
어느 정도 아프면 나아야 하는데, 만성기 질환에 시달리는 이들은 출구가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시달려야 합니다.
당연히 목소리는 날카롭고 짜증은 일상이 됩니다. 물론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 긴 병에도 성인같은 환자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병고보다 언성이 높지 않습니다.
자기만 아픈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일 수록, 자기의 불편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우선할 줄 압니다.
다른 이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크고
죽음에 저항하면서도 죽음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사실 병원에서 더 크게 해드릴 것이 없습니다.
병고는 앓고 있으나 그 고통에 지배당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일상이 병고를 이겨낸 사람들!
그들이라고 아프지 않는 것도 아니고,
불편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통증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뭐랄까요...
<얼굴>이 다릅니다.

고통이 더 이상 나의 일상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고통이 더 이상 나의 사랑을 가로막지 못합니다.
고통이 더 이상 내가 좋은 사람이 되려는 열망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고통은 어찌할 수 없으나 그것의 지배는 허용하지 않겠습니다.

요한 복음 17장은 ‘장엄한 고별사’의 절정에 해당합니다.
죽음을 앞두고 남은 자들을 위하여 바치는 이 마지막 기도는
고통을 처리하는 예수의 <주도권>이 명확해집니다.

오직 사랑 때문에, 마지막 남은 잔까지도 내가 비워내겠다, 일어섭니다.

어쩔 수 없이 사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죽을 것이고,
마지못해 사는 사람은 마지못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 그 하나 때문에 사는 사람은
사랑 때문에 능히 죽을 것입니다.

어떻게 사느냐를 선택하는 것이 어떻게 죽느냐를 결정한다지요.  
기왕 아플 거라면 이마저도 의미 있는 사건으로 만들 일입니다.
불행한 질병이 아니라 은혜로운 초대도 여기에 있습니다.

십자가는 그런 분이 일찌감치 만들어놓은 대문입니다. 아멘.









Prev  <다른 시선> 부활 제7주간 목요일
Next  <당신은 모를 것이다> 부활 제6주간 금요일 [1]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u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