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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8-04-24 18:38:05, Hit : 261)
<양심의 소리> 부활 제4주간 화요일 당리성당 미사

<부활 제4주간 화요일>

<양심의 소리>

병원은 아주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근무하는 공간입니다. 모여 있는 라이센스만 해도 스물 대여섯 개 되지요. 그리고 그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입퇴사를 반복합니다.

그 덕분에 병원의 인사를 담당하고 있는 저의 입장에서는 1년에 간호사만 해도 100명이 넘는 숫자를 면접 보게 됩니다. 그렇게 5년을 면접을 봤으니, 적지 않은 숫자를 본 셈입니다. 누구를 입사시키고 누구를 불합격시켜야 하는지, 이렇게 몇년을 했으니 도사가 되었을까요?

아닙니다. 보면 볼 수록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저 사람이다.” 싶은 사람은 얼마 가지 않아 못하겠다고 사직서를 씁니다. 하나 둘 밖에 없는 내 자식이 간호사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하면 부모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까짓거 하지마라!’, 합니다. “힘들어도 니가 해내야만 좋은 간호사가 된다.”는 소리는 하지 않습니다.

아예 어떤 친구들은 사직서를 쓰지도 않고 사라지는 이들도 있습니다. 환장하지요. 그럴 때마다 그런 친구들을 뽑은 제 자신을 탓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물론 그렇다고 실패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안될 것이라고 했는데, 사람이 없어 뽑아놓으면 모자라고 부족해도 꾸역꾸역 맡은 일을 수행해냅니다.

그러면서 깨닫는 바, 사람을 알려면 세월이 걸린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됩니다. 어느 정도의 세월일까요? 적어도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은 겪어볼 수 있으면 좋고, 조금 더 바란다면, 죽어라고 힘든 일을 함께 겪어보면 그래도 사람을 조금은 알겠습니다. 그전에는 그 인간이 말하는 갖가지 약속. 믿을 것이 하나도 없음을 절감합니다.

여러분도 안그렇습니까? 여자 남자 만나서 서로 뭘 안다고 결혼씩이나 했겠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웃긴 일이지요. 나도 나를 모르는데 내가 뭘 이 사람에 대해 짜달시리 다 안다고  그렇게 자신했을까! 막상 살아보니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지 않던가요?

그러니 내 손으로 내 눈 찔렀네 어쩌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모르긴 해도, 이 인간이 이런 사람인 줄 알았으면 그냥 혼자 살았을꺼라... 여기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근데 돌이켜보면, 인생은 그런 것 같습니다. 모르고 사는 것 같아요. 다 알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모르니까 사는 거고, 모르니까 겁 없이 나서는 거고, 모르기 때문에 알려고 또 사는 일이다 생각하면 크게 억울할 것은 없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양들은 목자의 소리를 알아듣는다, 하였습니다.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이 또한 세월이 걸린다는 것을 전제해야겠지요.

아이의 입에서 엄마 소리가 나오기까지 이만 번에 걸친 연습을 해야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자기에게 젖을 물린 제 엄마를 알아보는 것도 그만큼의 세월이 걸리는 일인데, 하물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소리를 알아들으려면, 이건 정말 난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연습을 하는 것이지요. 기도도 연습이고, 기억도 연습이고, 인식도 연습입니다. 아이가 하루 종일 엄마만 바라보듯이, 방향과 주파수를 가능한 지속하려고 애쓰는 세월이 쌓이다보면, 그렇습니다. 알아듣기가 훨씬 수월한 시절도 올테지요.

그 시절을 당기기 위한 팁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양심에 집중하시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똑똑하고 잘난 머리는 하느님 앞에서는 별로 쓸데가 없습니다. 양심입니다. 바르고 선한 마음이지요. 양심에서 울리는 섬세한 파동을 무시하지 마시라는 말씀입니다.

주로 보면 연민과 자애와 용서와 허용입니다. 배려에 속하는 것이고 인내에 준하는 것이며, 남이 아니라 나를 비추어보도록 이끌어주는 소리들이 그 울림에 속합니다. 이것에 더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그것이 어렵다면, 나는 내 내면에 귀 기울이는 것이 도통 힘이 든다면, 더 쉬운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역지사지를 하시면 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면 내 마음에 드는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그것을 수용하면 됩니다. 그러면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를 양심적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소리는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습니다. 그 마음, 상대의 마음에서 헤아릴 줄 아는 것이 바로 하늘의 소리, 하느님의 소리를 잘 알아듣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탁월한 능력입니다.

말을 많이 했지요? 이제는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가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그것을 들으시면 하늘의 소리가 훨씬 가까울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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