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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8-04-30 08:28:24, Hit : 335)
<밑그림> 부활 제5주간 월요일

<부활 제5주간 월요일>

<밑그림>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병원에서 생활해서 그렇지, 2018년 4월 27일은 훗날 역사에 대단히 놀라운 날로 기록될 것입니다. 분단 70년 만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패턴의 지도자들이 새 시대를 향한 도약을 다시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정상회담 한 번 한 것 가지고 호들갑 피울 일이 아니라는 사람들도 있고, 이럴 때일 수록 냉정해져야 한다는 소리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한반도 역사 안에 그런 소리를 하는 인간들이 주로 보면 분단을 고착화시키고, 냉전을 부추기며 반목과 불신으로 자기 배를 채워왔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국민들 좀 설레게 해주시고 좀 희망 갖게 해주시고 사람이 살아도 사는 것 답게 살게 해주는 게 정치지도자들 아닙니까? 뭣하는 짓입니까? 가뜩이나 좁은 땅덩어리에 허리 반토막 난 섬나라로 만든 게 뭐 짜달시리 대단한 일이라고, 민족중흥의 역사가 어떻고, 허구헌날 간첩놀이 빨갱이 궁리나 하고 앉아 있던 게 무려 70년입니다. 땅에 금 그어놓고 그거 넘어가면 무슨 대역죄인이라도 된 듯 고문하고 감옥 보내고, 철책선 너머에는 인간이 안 산답니까?

70년을 이렇게만 살아온 민족이 이 나라 빼면 지구상에 존재를 하질 않는데, 정말 독하다면 독하고 모질다면 모진 것이 이 민족 사람들이구나! 포기할 즈음에 지난 금요일 그 잘나빠진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양측 지도자가 손을 잡고 다시 오고 간 것입니다. 악수를 나누고 술잔을 나누고 잔칫집 마냥 왁자지껄할 때, 저는 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입니다. ‘자기는 깜이 안되지만, 그래도 문재인이라는 친구를 두었기 때문에 이 정도는 되는 사람!’이라고 큰소리치던. 임기 말년에 넘었던 그 군사분계선을 십년이 지나서 누군가 다시 이 경계를 넘어줄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바랬을꺼라고!

내가 없어지고 사라지더라도 누군가 다시 이 일을 시작하고, 우리가 꾸던 꿈이 현실이 되도록 영민하게 도모하며 남과 북의 모든 인민들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종전선언’이 아니라 ‘평화선언’을 하는 그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친구 문재인을 바라보는 노무현의 옅은 얼굴이 두 정상의 만남 속에 밑그림처럼 그려지는 게 큰 과장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내가 없어지고 사라지더라도 다시 누군가 이 일을 이어갈 수 있기를!

오늘 복음의 메시지도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의 장엄한 고별사가 시작되는 이 대목들은 일종의 유언형식으로 전달됩니다. 내가 없어지더라도 희랍어 ‘파라클레토스’, 곧 협조자, 보호자, 개신교에서는 이를 ‘은혜로서 보호해주시는 스승’이라 하여 ‘보혜사’라는 말로 번역하는 성령을 약속하십니다.

요한복음에서 줄기차게 강조되어온 영원한 생명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워진 출발, 육이 죽고 다시는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나는 구원의 심장이 이 교회 안에 지속될 것이고, 그 거룩한 영, 성령과 함께 사는 생활을 통하여 육에는 죽고 영으로 거듭나는 참 생명의 길을 걸어갈 것을, 스승은 이 장중한 유언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아니어도 상관 없습니다. 내 이름이 사라져도 좋고, 내가 한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지워지더라도 나는 좋습니다. 당신이 행복할 수 있다면. 당신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만 있다면. 죽음 준비를 마친 예수께서는 성령께 모든 것을 맡기시고 그 밤. 일어서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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