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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남기신 글 (2018-04-03 08:26:37, Hit : 353)
<나의 하느님> 부활 팔일 축제 내 화요일

<주님 부활 팔일 축제 내 화요일>

<나의 하느님>

시골에 가면 지금도 개를 많이 키웁니다. 낯선 사람을 보게 되면 첫 번째 개가 짖기 시작하지요. 그러면 덩달아 동내 개들이 짖어대니 난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오래 가지는 않습니다. 주인들이 나와서 한소리씩 하면 점차 소리가 잦아드는데 유독 한 녀석은 끝까지 짖습니다. 어느 놈인지 아십니까?

낯선 사람을 처음 보았던 그 놈입니다. 그 놈만은 끝까지 짖습니다. 개가 짖는다고 다 같이 떠드는 게 아니라는 걸, 덩달아 짖는 건 소음에 불과하지만, 처음 본 놈, 그 놈의 소리에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걸, 그 때 알았습니다.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부활의 증거로 내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단지, “제가 주님을 뵈었을 뿐입니다.”

당시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지도 않던 한 여성의 고백이 지닌 위태로움과는 별개로,
부활은 이 한 줄의 증언으로부터 육중한 믿음을 확보하게 됩니다.

“제가 부활하신 그분을 뵈었습니다.” 이 증언이 확산되지요.
그리고 첫 번째로 부활을 증언했던 그녀는 끝까지 이것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죽음으로 끝나지 아니하신 분.
절망으로 좌초되지 아니하시고,
패배와 낙담과 좌절로 종결되지 아니하시고,
참으로 되살아나셔서 나를 찾아와주신 바로 그분.

아마 그녀도 이것이 부활인지 전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개념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그러니 이것을 설명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단지 증언할 뿐입니다. “제가 주님을 뵈었다.”라고 말입니다.

“환영이나 선망이 아니라, 육과 살을 가지신 채로 나를 ‘마리아야!’하고 불러주신 바로 그분을 나는 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떤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고 바꾸지 못하는 명확한 나의 현실입니다.”

교회의 부활 고백은 저마다의 부활 체험으로부터 출발하였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부활하신 그분을 우리도 만날 수 있다는 확장성을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신앙인을 자처하지만, <나의 하느님>이 명확한 신앙인! 이것이 진짜입니다.
누가 뭐라해도 내가 체험했기 때문에, 나의 하느님은 내 것이기 때문에!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바꿀 수 없는 나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나는 고백합니다.

“나는 그분을 뵈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바로 이 한 줄입니다. 아멘.

루시아 "나는 그분을 뵈었습니다."...어떤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나의 하느님.나의 아버지!!  아멘~
신부님,항상 감사드리며..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2018/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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