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1 8/203 회원가입회원로그인
  View Articles
 님께서 남기신 글 (2018-01-05 08:46:20, Hit : 306)
<금혼식> 주님 공현 전 금요일

<주님 공현 전 금요일>

<금혼식>

오늘 이 짧은 만남을 전하는 복음 안에서 가장 많이 쓰인 동사는 ‘βλεπω’ 동사, 무려 7번을 ‘보다’ 동사를 사용합니다. 대단히 의도적인 배열이라 하겠습니다. 와서 ‘보고’, 나타나엘을 ‘보시고’, “하느님의 어린양을 보라.” 했던 것처럼 그를 향해 ‘보라’ 하십니다. 그리고 이미 내가 너를 ‘보았고’, 앞으로도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하십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를 보시고, 이집트 땅에서 고통 받는 이스라엘을 보시고, 그분의 구원 장중한 여정을 펼치신 분이십니다. 보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인간의 꼴이라는 것이 어떤 주제인지를 좀 보는 것이 개과천선의 출발이 됩니다. 그런데 그 꼴을 못봅니다.

그렇게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정작 자신은 보지 못합니다.
그러니 바뀌지 않고 변화되지 않습니다.
자기를 본다고 하지만 정작 자기만 보지 못하는 겁니다.
모든 갈등 관계의 기조라고 하겠습니다.

어제 잠깐 부모님네의 금혼식 이야기를 꺼냈는데, 좋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50년을 함께 살아낸 것이 대단히 훌륭한 일이기는 하나, 그것을 두고 잔치를 벌인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지요.

함께 살아 보게 된 것이 그저 자기들 내놓은 새끼들이 장성하여 또 자녀들을 번성시키고, 단지 그것이 보기 좋은 일이라며 저네들끼리 모여 잔치를 펼친다면 그게 무슨 동물의 왕국도 아니고 짜달시리 자랑할만한 일이라도 되는가!

그저 숱한 이야기 감당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아내준 덕분에 내가 알고 보게 된 수많은 꼴과 사람들께 감사하고, 그분들 덕분에 더 많은 이들에게 신세 갚고 감사하는 일이 더 뜻 깊고 의미 있는 것이지, 무슨 놈의 호텔에서 식사를 하고 친지를 불러 잔치판이냐! 형제들에게 타박을 하였습니다.

물론 제가 그렇게 말하면 최소 비용만 갹출하면 되겠다는 얄팍한 속셈도 있었지요.
제 말을 깊이 새긴 모친께서 그러십니다.

“신부님 말씀이 백번 옳고. 그러면 그동안 살면서 신세진 사람들 생각해서 신부님이 나한테 백만원만 주소. 부산진역 무료급식소 ‘신빈회’를 찾는 노숙자들 하루 식대가 200만원인데, 자식들이 모아준 돈으로 금혼식 잔치 대신에 그분들 식사대접을 당신과 당신 자식들이 함께 해달라!” 하십니다.

이거 말 잘못 꺼냈다가 빼도 박도 못하게 생긴 거지요. 쥐꼬리만한 신부 월급 나 혼자 쓰기도 빤한데 무슨 수로 갑자기 생돈 백만원을 만들겠습니까? 그래서 지난 대림에 목이 쉬도록 강의를 다녔습니다. 생전 가지도 않던 철야기도회까지 갔습니다. 주제도 모르고 설친 죄값음으로 겨우 만들어 드리니, 당신들 결혼기념일인 이번주 주일. “미사 한 대 해주시고, 미사 끝내고는 온 가족이 함께 가서 노숙자분들 식사대접 해드리자!” 하십니다.

계획한 것보다 언제나 더 한 것을 보게해주시는 하느님 덕분에 한 주말이 바쁘게 생겼습니다만, 세상 살아 보게 되는 일들 중에 이런 금혼식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괜한 말씀을 드립니다.







Prev  <그분께서 해주신 일 하나도 잊지마라.> 부산가톨릭간호사회 총회 미사
Next  <알아봄> 주님 공현 전 목요일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uZine